국제 유가 배럴당 120달러 육박
29년만에 가격 통제 카드 꺼내… 李 “물가부담 큰 서민대책 마련”
코스피 서킷브레이커 뒤 5.96%↓
원달러 환율 1500원선 돌파 눈앞
치솟는 기름값… 휘발유 싸게 팔자 매진
9일 인천 중구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가 소진됐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이날 이곳은 수도권 다른 주유소보다 싸게 팔아 오전에 재고가 바닥났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하고 국내 휘발유 가격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기름값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천=뉴시스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하자 정부가 1997년 유가 자율화 이후 29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를 이번 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유류세 인하 폭 확대, 소비자 직접 지원 등 전방위 대책도 추진하기로 했다.
유가 급등의 충격이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경제 안정을 위한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1979년 2차 오일쇼크 때 전 세계를 강타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이번 중동 지역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 있다”며 “전방위적 수단을 통해 철저하고 치밀하게 대비해 달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최근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 제품 가격에 대해서는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해야 한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부담이 서민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돌아가는 만큼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 도입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이날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이번 주 내 최고가격제가 시행될 수 있도록 고시 제정 등 관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라며 “최고가격 지정은 2주 단위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유류세 인하 폭을 확대하고 소비자를 직접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소비자 직접 지원은 화물차·택시 등 운수업 종사자 유가보조금 확대, 저소득층 에너지 바우처 지원 등이 거론된다.
이날 여러 대책이 긴박하게 발표된 것은 국제유가 상승세가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산과 소비, 투자 등 산업활동 전반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 오일쇼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장기 저성장이 고착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날 3거래일 만에 다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5.96% 하락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도 장중 1500원 선 돌파를 눈앞에 두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8일(현지 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한때 전 거래일 대비 30% 넘게 오른 119.48달러로 치솟은 탓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최근의 흐름이 중동 정세 악화라는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만큼 이런 조치만으로는 국내 기름값 상승 속도를 늦추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최고가격 지정제 역시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의 불확실성으로 합리적인 상한을 설정하는 데 한계가 큰 만큼 운송비 지원 확대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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