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파 반발에 ‘북핵-교류’ 쪼개지는 대미 채널… “정책 혼선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7일 03시 00분


한미 대북정책 협의에 통일부 불참… 통일부 “남북대화-협력땐 주도할것”
케빈 김, 통일부 별도 논의 묻자 침묵… ‘북핵-교류’ 채널 분산, 美호응 관건
방미 위성락 “‘원보이스’ 노력 계속”

팩트시트 후속협의 나선 한미
한미 외교당국은 1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양국 정상이 합의한 한미 관세·안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후속 협의를 열었다. 첫 협의에 양국 수석대표로 참석한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오른쪽)과 케빈 김 주한 미국대사대리가 악수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팩트시트 후속협의 나선 한미 한미 외교당국은 1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양국 정상이 합의한 한미 관세·안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후속 협의를 열었다. 첫 협의에 양국 수석대표로 참석한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오른쪽)과 케빈 김 주한 미국대사대리가 악수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대북정책 주도권을 두고 외교부와 통일부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미국과의 대북정책 협의 채널을 분리하는 방안에 무게를 실으면서 남북 교류 재개를 위한 통일부의 선제적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외교부는 미국과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sheet·공동 설명자료)에 담긴 북핵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조율하되 남북 교류에 대해선 통일부가 미국과의 협상 채널을 구축한다는 것. 통일부가 별도 채널로 대북제재 완화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을 미국에 제안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북핵 협의-남북 교류로 대미 외교채널 분리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은 16일 케빈 김 주한 미국대사대리 및 국무부 관료들과 첫 한미 대북정책 고위 협의를 가졌다. 양측은 “향후 한반도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각급에서 소통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이날 출범한 협의체 명칭은 남북 공조를 중시하는 ‘자주파’와 통일부 반발을 의식한 듯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로 정해졌다. 한미 대북정책 정례협의를 ‘제2의 한미워킹그룹’이라고 비판하며 불참을 선언한 통일부는 주한 대사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별도 행사를 열었다.

통일부는 남북 대화 및 교류협력 분야를 미국과 직접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 대화나 교류 협력이 있을 때는 통일부가 좀 더 주도적으로, 적극적으로 하겠다”며 “다른 노선이라기보다는 사안별로 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와) 공통 목표를 향한 접근법이 다를 수 있지만 결국 하나의 입장으로 갈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부처 간 불협화음이 계속 불거지자 안보실과 외교부는 진화에 나섰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미국 출국길에 ‘원 보이스’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박일 외교부 대변인도 정례브리핑에서 “외교부와 통일부는 정부의 원팀으로, 양 부처 간의 엇박자 우려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페이스메이커 두 명이 이리저리 뛰는 격”

정부가 대북정책과 관련된 미국과의 협의 채널을 외교부와 통일부로 분리하기로 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남북 교류를 재개하기 위해선 더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사대리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꺼낸 한미 연합훈련 조정과 대북제재 완화 카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외교부 중심의 한미 협의체가 대북정책 전반을 조율하면 남북 교류 재개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것. 정 장관은 지난달 25일 한 세미나에서 김대중 정부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금강산 관광 첫 출항 일정을 강행한 사례를 강조하며 “한반도 문제는 미국의 승인과 결재를 기다리는 관료적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미국이 대미 채널 분산에 호응할지 여부다. 김 대사대리는 16일 외교부와의 팩트시트 후속 협의 직후 “통일부와 별도의 회의를 가질 예정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 없이 떠났다. 미국은 ‘긴밀하게 연계된 북한과의 교류와 핵 협상, 제재 논의를 어떻게 분리해서 협의하느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가 힘을 모아 정교한 대북 정책을 만들어 미국을 끌어가는 게 페이스메이커(pacemaker)인데, (협의채널이 분리되면) 페이스메이커 두 명이 이리저리 뛰는 셈”이라며 “주요 부처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교류 재개를 위한 정부의 카드에 북한이 응답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외교원이 이날 발간한 ‘2026 국제정세전망’에서 전봉근 명예교수와 이상숙 교수는 “북한은 국내 정치에 집중하며 적대적 두 국가론을 지속하고 북-러 관계를 강화하면서 남북 대화를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제재 완화가 제시된다면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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