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보호주의에 자유무역 밀렸다…경주선언에 WTO 빠져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1일 19시 30분


‘WTO’ 표현 각료회의 공동성명에만 포함
미-중 신경전 속 폐막일 오전 합의안 도출
‘문화창조산업’ 의제 APEC 선언 첫 반영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APEC 2025 KOREA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APEC 2025 KOREA 제공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결과물인 ‘경주 선언’이 1일 채택됐다. 역대 APEC 선언마다 담겼던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언급이 빠지고 ‘자유무역’에 대한 표현 수위도 약해졌다. 다만 통상 질서를 놓고 미-중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합의를 도출한 것 자체가 유의미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일 경주 APEC 21개 회원국이 채택한 경주선언에는 WTO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 역대 APEC 선언 때 담긴 “WTO를 핵심으로 하는 규칙 기반 다자 무역체제에 대한 지지” 등에 대해 회원국 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유무역과 WTO 체제에 대한 반감이 큰 만큼 미국 정부는 WTO를 언급하는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WTO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빠졌으나 ‘AEPC 푸트라자야 비전 2040’ 달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나아가자는 내용은 포함됐다. 2020년 채택된 ‘푸트라자야 비전 2040’은 2040년까지 달성하고 하는 APEC의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WTO 규범에 대한 우리의 지지를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함께 발표된 APEC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AMM) 공동성명에는 “우리는 무역 현안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WTO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AMM 공동성명은 올해 개최된 14개 분야별 장관회의 등 APEC 산하 회의의 주요 논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정상선언에는 중점 과제에 대한 방향성을 담는 것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은 AMM에 담긴다”고 밝혔다. 경주선언에 WTO에 대한 언급은 빠졌지만 지지 의미는 담겼다는 취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EC 2025 KOREA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EC 2025 KOREA 제공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 수위는 과거보다 약해졌다. 지난해 11월 페루 APEC에서 채택된 ‘마추픽추 선언’에는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공정하며 비차별적이며 투명하고 포괄적이며 예측 가능한 무역 및 투자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으나 경주선언에는 ‘견고한 무역 및 투자’,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에 대한 언급에 그쳤다.

회원국 간의 이견을 조율하는 문안 협상은 정상회의 폐막일인 1일 오전 7시 30분까지 진행됐다. 합의문 도출을 위해 실무진들이 밤샘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큰 쟁점은 무역과 투자에 관한 챕터를 둘 것인가였는데 원만하게 합의를 해서 의견을 모았다”며 “전체적으로 모든 회원국이 뜻을 모아 아태지역, 전 세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충분히 의미있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북 경주 APEC 국제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공식기자회견에서 국내외 취재진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5.11.01.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북 경주 APEC 국제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공식기자회견에서 국내외 취재진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5.11.01.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번 경주선언에 우리 정부가 주도한 ‘문화창조산업’ 의제를 담은 것은 성과로 꼽힌다. APEC 선언에 ‘문화창조산업’이 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APEC AI 이니셔티브’와 ‘APEC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 등도 경주선언과 함께 채택했다. 대통령실은 “APEC 정상 차원 최초로 AI·인구·문화창조산업에 대한 공동인식 및 협력 방향 제시했다”며 “향후 우리 K-컬쳐가 아태 지역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중 간에 서로 충돌하는 지점은 적절하게 타협을 봤고 한국이 말한 어젠다도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합의문 도출을 통해 아태 지역 다자주의의 불씨를 살렸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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