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 첩첩산중…흔들리는 이재명 리더십[고성호 기자의 다이내믹 여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일 14시 00분


코멘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 도중 눈을 감은 채 손으로 턱을 만지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 도중 눈을 감은 채 손으로 턱을 만지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법치의 탈을 쓴 정권의 퇴행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장.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의원들을 향해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했다.

이 대표는 “뚜렷한 혐의도 없이 제1야당 대표를 구속시키려는 헌정사상 초유의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역사적인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라며 “권력자가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것은 주권자에 대한 배반이고 민주공화정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예상됐던 압도적 부결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 여야 의원 297명이 무기명으로 투표한 결과 찬성 139명, 반대 138명, 무효 11명, 기권 9명으로 집계됐다. 체포동의안은 부결됐지만 민주당 내에서 이탈표가 상당수 나온 것이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이 찬성표를 던져야 가결된다.

앞서 당 지도부는 의원총회를 통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정부의 체포동의안 제출이 매우 부당하다는 점을 총의로 분명히 확인했다”며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다. 민주당은 국회 전체 의석 299석 중 169석을 차지하고 있어 단독으로 부결이 가능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투표 결과에 대해 “정치검찰의 부당하고 과도한 표적수사에 대한 헌법의 정신과 규정을 지킨 당연한 결과였다”면서도 “표결의 결과가 민주당이 의원총회에서 모은 총의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표결 결과가 주는 의미를 당 지도부와 함께 깊이 살피겠다”고 말했다.

일단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이 대표에 대한 법원의 구속여부 판단은 이뤄지지 않게 됐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대장동 및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과 관련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신상발언을 통해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역설했지만 다수의 이탈표가 나오면서 리더십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다. 단일대오를 강조하며 압도적 부결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이 대표와 친명(친이재명)계의 당 장악력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3.02.27.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3.02.27. 뉴시스


이번 무더기 이탈표는 검찰 수사에 더 이상 끌려다닐 수 없다는 비명(비이재명)계의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내년 총선에 불안감을 느낀 비명계가 무기명 투표를 통해 경고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최소 31명, 최대 38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체포동의안에 찬성하거나 기권 등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며 “민주당에서도 38명이나 되는 분이 정치 탄압이라는 이재명 의원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당의 단일대오가 무너진 상황에서 검찰의 영장 청구, 기소 등이 이어질 경우 이 대표의 리더십은 더욱 불안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당의 운명이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에 좌우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 대표는 거취에 대한 압박을 거세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3일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이 시작된다. 제1야당 대표가 계속 법원에 출석할 경우 총선을 앞두고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공판 준비와 법정 출석 등으로 인해 당 대표로서 당무 수행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사법리스크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안팎에선 검찰이 새로운 혐의로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검찰이 추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국회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방탄 정당’이라는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며 체포동의안을 계속 부결시키기가 부담되기 때문에 이탈표가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또한 검찰이 추가 기소할 경우 이 대표가 출석해야 하는 재판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실제 검찰은 이르면 다음 주에 대장동 및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검찰이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의혹과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등과 관련해 추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체포동의안 부결과 관련해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의 우려에 비춰 구속 사유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따라 법원의 구속영장 심문 절차가 아예 진행될 수도 없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향후 검찰은 사안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보강수사와 함께 현안에 대한 수사를 엄정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3회 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국회의원 이재명에 대한 체포동의요청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2023.2.27/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3회 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국회의원 이재명에 대한 체포동의요청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2023.2.27/뉴스1


친명계와 비명계의 갈등은 당헌 80조 적용 여부를 놓고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비명계 일각에선 검찰이 이 대표를 기소할 경우 부정부패 등으로 기소 시 당직을 정지할 수 있도록 규정한 당헌 80조 1항에 따라 이 대표의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반면 친명계는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당헌 80조 3항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친명계는 전열 정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소 31명의 이탈 세력이 확인된 만큼 당내 화합과 단결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이 대표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방식으로 사태를 수습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이 대표 사퇴 여부를 당 중앙위원회를 열거나 당원 투표로 결정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대표직 사퇴 요구가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관련해 총선 패배에 대한 공포감이 높아질 경우 비명계를 중심으로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27일 체포동의안 부결과 관련해 “검찰의 영장청구가 매우 부당하다는 것을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확인해주셨다”며 “당 내부와 더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해 윤석열 독재정권에 강력히 맞서 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당내 여론에 귀 기울이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선 변화가 없다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운데)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운데)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원내 지도부도 내분 수습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1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은 표결 결과가 누구의 책임인지를 더 따져 물을 때가 아니다. 우리끼리 책임을 추궁하며 분열의 늪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윤석열 정권이 노리는 함정”이라며 “윤석열 정권의 정치 탄압을 이겨내기 위한 야당의 조건은 첫째도 둘째도 단합”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무더기 이탈표의 수습은 이 대표의 당내 결집 여부와 여론 추이에 달려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방탄 정당이라는 정치적 역풍이 불고 있고, 당이 내홍에 휩싸인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이길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을 경우 이 대표가 스스로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퇴진 요구가 집단적으로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