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에는 직(職) 던진다…‘대통령 그림자’ 거부한 신현수

이태훈 기자 입력 2021-02-19 11:48수정 2021-02-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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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참석한 대통령과 민정수석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오른쪽)이 검찰 인사에 불만을 품고 사의를 굽히지 않고 있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신 수석의 사의를 거듭 만류했으나 신 수석은 17일까지도 사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문 대통령과 신 수석.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청와대 참모들은 흑백으로 처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퇴로 굳어져가고 있는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사의 파문은 단순히 청와대 참모 한 명의 진퇴 문제를 뛰어넘어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 전체에 충격파를 던지는 중대 사건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고, 대통령 통치권의 물리적 기반이 되는 요직인 민정수석이 대통령의 거듭된 만류를 뿌리치고 사퇴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는 검찰 인사에 대한 이견으로 신 수석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나 민정수석실 직속 부하인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갈등을 빚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본질은 신 수석이 검찰 인사 등 주요 현안에서 결과적으로 자신을 배제시킨 문 대통령을 들이박고 청와대를 박차고 나가는 형국이어서 그가 최종 사직하게 될 경우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서 비서진과 대통령과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면서 사의 파문이 발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이런 사태가 청와대에서 터지지 않은 것은 주요 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참모들 간에 이견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결정하면 참모들은 이에 따랐고 논의 과정에서 자신이 배제되거나 ‘패싱’을 당해도 사직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좌만 할 뿐 벙어리로 산다’는 이런 태도는 어떤 면에서는 ‘대통령의 그림자’로 살아야 한다는 청와대 비서진의 본래 역할에 충실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올곧은 성품의 신 수석은 청와대 참모로 임하는 자세가 여느 비서진과는 달랐다. 자신의 소신을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건의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공직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패싱’이나 항명 같은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직(職)’을 던진다는 공직관을 평소 갖고 있었고 이번에 실제 결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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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직속상관과 부하로 일해 오면서 신뢰관계를 형성해 온 신 수석으로서도 대통령에게 항명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거듭된 사의 표명은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사의 표명 후 휴가를 내고 사실상 청와대를 떠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신 수석이 한 달여간의 짧은 청와대 생활에서 누적된 무력감과 치욕감이 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검찰 인사안 결재 경위야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주무 수석인 자신을 배제시킨 문 대통령에 대해서도 서운함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신 수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일 때 직속 부하인 사정비서관(현 반부패비서관)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개혁과 측근 비리 수사 등을 놓고 검찰과 대립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러면서도 노 대통령은 ‘검찰 불개입 원칙’을 고수해 검찰 관련 수석인 문재인 민정수석과 신현수 사정비서관이 업무를 하는 데 고충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때에 사법시험 합격 후 변호사의 길을 걸어 검사들의 생리에 익숙치 않았던 문 수석을 신 비서관이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보좌했고, 사심 없이 원칙대로 일처리를 한 신 비서관을 문 수석이 눈여겨봤던 것이다.

그렇게 상하관계로 일하면서 인간적 신뢰까지 갖게 됐고, 그것이 오늘날 대통령과 민정수석이라는 최고위직에서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의 근 20년 인연이 이번 사의 파문을 계기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휴가에서 복귀하는 내주 월요일 신 수석의 사의가 최종 굳어지면 문 대통령도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사표 수리와 함께 후임자 발표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신 수석의 복귀 여부와 별개로 향후 정국은 정권 관련 수사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검찰과, 검찰의 직접 수사권 완전 박탈을 목표로 검찰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 여권이 충돌할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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