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총리·외교장관 해외 순방?…‘일본통’ 차관이 대응

  • 뉴시스
  • 입력 2019년 7월 11일 15시 05분


코멘트

'총리 해외 순방=1차관 수행' 관례 깨고 국내에
대(對)한국 수출규제에 2차관이 수행키로 결정
수개월 전부터 방문상대국 고위급과 일정 조율
"최고위급 인사 면담 일정 잡혀…재조정은 무리"
정상외교 수요 늘어나…'투톱' 나서 외교 총력전
"한일관계 대응 문제 없다"…총리실TF 계속 가동
강경화, 에티오피아서 美 폼페이오에 협력 당부
"새 경제영역 개척은 숙명…정상외교가 효과적"

강경화 장관이 지난 10일 아프리카로 떠난 가운데 ‘일본통’ 조세영 1차관이 이낙연 국무총리 해외 순방을 수행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한일관계를 관리한다. 총리와 외교수장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지만 한일관계에 정통한 조 차관이 남아 내각 차원의 현안 대응을 책임질 것으로 관측된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오는 13~22일로 예정된 이낙연 총리의 중앙·서남아시아 등 4개국(방글라데시,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타르) 순방 일정은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이 수행한다. 총리 해외순방을 1차관이 수행하던 관행을 깨고 이례적으로 2차관이 가는 것이라 주목된다.

이 총리는 지금까지 모두 10번의 해외순방을 다녀왔다. 그 중 8번의 순방은 외교부 1차관이 수행했다. 지난해 10월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 조문사절로 파견됐을 때는 외교1차관 교체 시기라 조현 당시 2차관이 동행했고, 지난해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참석 차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는 차관을 대동하지 않았다.

이번 순방도 처음에는 조세영 차관이 준비했다. 그러나 지난 1일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발표 이후 한일관계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1차관이 순방에 동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외교부와 총리실이 의견을 모았고, 순방 업무는 2차관이 이어받았다. 강 장관이 10~16일 아프리카 순방으로 자리를 비우는데, 조 차관마저 총리 순방(13~22일)으로 해외에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일관계가 엄중한데 대응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총리와 외교장관이 장기 해외출장을 가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상대국과 수개월에 걸쳐 조율한 일정을 갑작스럽게 취소하는 것은 상당한 외교적 결례다. 외교 의전업무에 정통한 관계자는 “정상급 순방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는 것은 외교적 물의”라며 “우리 측에서는 연기하자고 하겠지만 다시 일정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총리실은 “이번 4개국 방문은 모두 공식방문으로 방문 대상국과의 세밀한 교섭을 통해 국왕, 대통령, 총리 등 최고위 인사들과 면담을 정한 만큼 전체 일정을 재조정하는 데는 많은 외교적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강 장관도 상대국 최고위급에 대한 예우를 고려해 예정대로 아프리카로 떠났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강 장관의 방문 의사를 전하자 에티오피아 총리는 해외순방을 가려다 일정을 조정했고, 가나 외교장관도 계획된 일정을 바꿨다는 것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정상외교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외교부는 이런 추세를 반영해 올해 업무보고에서 ‘투톱 외교’를 공식화했다. 대통령의 외교 일정은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는 대신 총리가 정상급 외교에 나서서 여러 나라와 외교관계를 두텁게 하는 한편,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전략이다.

이번 총리 순방에 포함된 국가들도 ‘투톱 외교’의 연장선에 있다. 카타르 국왕이 지난 1월 방한 당시 문 대통령에게 답방을 초청했으나, 대통령이 방문할 여력이 없어 총리가 가기로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중앙아시아 순방 때 찾지 못했던 2개국을 찾는 것도 같은 이유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한국 정상이 수교 이후 한 번도 오지 않았다며 정상급 방문을 강력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무역갈등으로 위기를 맞은 기업의 대응책도 마련해야 하지만, 정상급 경제외교로 기업이 보는 수혜도 크다. 지난해 이 총리가 순방을 다녀온 이후 탄자니아에서는 빅토리아호 선박 건조·수리사업, 알제리에서는 우마셰 복합화력발전소 건설사업 수주가 진행됐다. 각각 1억달러, 8억달러의 대규모 프로젝트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이 열세에 있다가도 정상급 방문을 계기로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 총리는 이번 순방에서도 신시장 개척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1억6000만 인구가 살고 있어 동남아와 중국에 이어 잠재시장으로 떠오르는 국가다. 또 카타르는 한국 기업이 참여하려는 사업이 320억달러(약 37조6384억원)에 달하는 나라다. 지난 1월 카타르는 LNG선 60척 신규 도입(120억달러) 의사를 밝혔고, 이 총리는 이번 순방에서 이를 포함한 여러 건설·인프라 사업을 한국 기업이 수주할 수 있도록 카타르 측에 지원을 요청할 예정이다.

외교 다변화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지난 3월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출범한 아프리카는 그 중에서도 전략적인 무대다. 일본은 다음달 말 아프리카 50개국을 초청하는 정상외교 일정을 마련하고 있고, 중국은 지난달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중국-아프리카 정상회담을 열었다. 한국도 이런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총리와 외교장관이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강 장관은 오는 16일까지 에티오피아, 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다.

총리실과 외교부는 한일관계 대응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강 장관은 순방 중에도 한일관계 동향 보고를 수시로 받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는 일본과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미국이 협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총리실 산하 강제징용 TF는 차관급 회의와 분과별 회의가 가동되고 있으며, 이 총리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방안 논의 결과를 계속 보고받을 예정이다.

외교부 내 대표적인 일본통인 조 차관은 지난 5월24일 취임한 이후 물밑에서 한일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조 차관은 지난달 13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와 통역 없이 만찬을 하며 한일관계 현안을 논의했고, 정부가 지난달 강제징용 기금조성안을 일본 측에 제안하기 전에도 극비로 일본을 방문했다. 곧 순방길에 오를 이 총리도 조 차관에게 한일관계 대응을 신신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들은 한일관계를 소홀히 한다는 일각의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석우 총리실 공보실장은 이날 출입기자단에 보낸 이메일 브리핑에서 “세계에서 대외 의존도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인 우리가 새로운 경제영역을 개척하고 확대해 나가는 것은 숙명”이라며 “정상외교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4강 외교가 중요하지만 4강에만 발이 묶여 있다면 외교 다변화는 기약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