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특검이 언론 플레이”… 특검 “이렇게 옹졸하게 나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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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특검 힘겨루기]9일 대면조사 무산 놓고 공방


박근혜 대통령이 9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면조사를 받겠다던 특검과의 합의를 번복하면서 대면조사가 실제 이뤄질지 유동적인 상황이 됐다. 박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대면조사를 거부한 것은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3차례 대면조사 시도를 포함해 이번이 4번째다.

청와대 경내에서 비공개로 할 예정이던 대면조사를 단지 조사 날짜가 사전에 보도됐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은 박 대통령 측이 이번 대면조사에 얼마나 큰 부담을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靑 “특검 언론 플레이”…특검 “일정 노출 안 해”

청와대와 특검은 비공개 조사를 전제로 구체적인 조사 장소와 양측의 배석 인원 등 세부 사항을 조율해 왔다.

특검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관의 첫 조사라는 점을 감안해 박 대통령 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 왔다. 이규철 특검보는 7일 브리핑에서 “10일 언저리에 대면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날짜나 누가 박 대통령 조사를 담당할지 등 구체적 내용은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구속 기소) 등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을 기소하면서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대면조사를 앞둔 박 대통령에 대한 배려였다. 박 대통령이 ‘공모자’로 적시된 공소장이 공개될 경우 박 대통령 측에서 이를 빌미로 대면조사를 거부할 수 있다고 우려했던 것.

7일 저녁 일부 방송에서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9일로 확정됐고 조사 장소는 청와대 위민관”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특검에 각 언론의 사실 확인 요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특검 측은 “일절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출입기자단에 전달했고 일부 특검 관계자들은 아예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8일 청와대는 ‘9일 대면조사’를 보도한 특정 언론사를 언급하면서 특검보 1명이 대면조사 사실을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면조사와 관련한 세밀한 부분까지 논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특검에서 먼저 언론 플레이를 했다”며 “(대면조사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반면 특검은 이날 “대면조사 일정을 외부에 일절 노출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특검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 측이 대면조사를 무산시키기 위해 언론에 정보를 흘린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까지 옹졸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이날 오후 박 대통령 변호인단은 ‘9일 대면조사는 받지 않고 일정을 다시 조율하겠다’는 입장을 특검에 전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변호인단이 그동안 특검의 피의 사실 공표 사례와 신뢰를 깨뜨린 특검의 태도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고 전했다. 내부적으로는 “특검이 완장을 찬 것 같다”는 노골적인 불만도 터져 나왔다.

○ 안종범 수첩 39권…대면조사에 부담


박 대통령 측은 특검의 대면조사에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통령 신분은 대면조사 일정과 방식을 조율할 때는 유리한 점이 있지만, 정작 직접 조사 장소에 나서는 순간부터 약점이 된다. 국가원수의 신분상 이미 사건 관련자들이 검찰이나 특검에서 진술한 내용에 대해 일반 피의자처럼 묵비권을 행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건 해명을 하다 보면 약점을 잡히기 쉽다는 게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의 분석이다. 특검이 조사 장소를 청와대가 원하는 곳으로 양보하면서까지 대면조사를 성사시키려 한 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설 연휴 직후 특검 수사가 확대되는 기류도 박 대통령에게는 부담이다. 특히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수첩 39권을 특검이 입수한 게 결정적이다. 이 수첩 39권에는 박 대통령이 2년여 동안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특검의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마무리되면 헌법재판소는 특검에 박 대통령의 피의자 신문 조서를 보내 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특검 대면조사에서 변호인을 입회시키면 헌재는 특검이 작성한 박 대통령의 신문 조서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

○ “박 대통령, 대면조사 거부 명분 쌓나”


특검 안팎에선 박 대통령이 특검의 대면조사에 불응하기 위한 명분을 쌓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처럼 언론 보도 등을 핑계로 몇 차례 더 시간을 끈 뒤 특검의 공정성 등을 문제 삼아 대면조사를 아예 거부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에도 “수사가 공정하지 않다”며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까지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검은 이달 말 끝나는 수사 기한 연장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요청키로 했다. 박 대통령이 대면조사에 불응해 여론이 악화되면 황 권한대행으로서는 수사 기한 연장을 거부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청와대도 아직 대면조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면조사 시점이) 이번 주는 어렵고 다음 주 초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특검 조사에는 임하려 한다”고 밝힌 만큼 대면조사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각에서 지연 전술이니, 대면조사 회피 전술이니 하는데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헌정 사상 첫 대통령 대면조사인 만큼 예의를 지켜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우경임·허동준 기자
#특검#대면조사#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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