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개헌 저지 보고서 파문은 4일에도 이어졌다. 보고서를 작성한 민주연구원의 김용익 원장이 이날 사의를 표명했지만 비문(비문재인) 진영은 “김 원장의 사의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당내에서는 이번 파문이 당내에 잠복해있던 친문(친문재인)-비문 진영 간 갈등을 넘어 개헌을 고리로 한 ‘비문 연합전선’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김 원장은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원장은 “(보고서 문제의)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대표는 보고서 작성의 책임을 물어 보고서 작성자를 보직 해임하고 대기 발령했다.
추 대표가 개헌 보고서 파문을 적극 수습하고 나선 것은 ‘경선 룰’ 결정을 앞두고 당내에 미치는 영향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예민한 시기에 적절치 않은 내용이 일부 담긴 보고서가 나와 최고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비문 진영은 지도부와의 일전도 불사할 태세로 반발했다. 한 비문 의원은 “당 지도부가 작성자 대기 발령으로 이 문제를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면 심각한 오산”이라며 “당내에 만연한 친문 패권주의가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고 했다.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김부겸 의원 측 허영일 공보특보는 “특정 후보에게 편향된 전략 보고서 책임을 작성자에게만 돌리는 것은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추 대표는 김 원장의 자진 사퇴 의사에 대해 “진상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거취를 결정하자”고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문 진영은 국회 개헌특위 구성까지 문제 삼으며 보고서 파문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개헌특위 참여 희망자 신청을 받으면서 ‘선호하는 정치체제’를 적어 내라고 했다”며 “당시에는 ‘이걸 왜 적어야 하나’ 의아했는데 보고서를 보니 이유를 알겠다”고 말했다. 보고서에는 “4년 중임제에 긍정적이거나 비슷한 입장을 밝힌 의원을 다수 참여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에 따라 의원 30명이 참여한 ‘경제민주화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가칭)은 이 문제를 논의할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해 놓았다.
당내에서는 이번 파문으로 개헌 논의가 오히려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비문 진영의 한 초선 의원은 “개헌에 대한 친문(친문재인)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 상황에서 친문 진영은 앞으로 개헌 논의에 목소리를 높일 수 없게 됐다”며 “보고서에서 개헌 저지 의도를 드러낸 만큼 보고서 의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개헌 논의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사진)도 이런 분위기에 동조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경남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선 후보들이 개헌의 과제와 로드맵을 공약하고, 그에 따라 다음 정부 초반에 개헌을 하는 게 순리”라며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 밖에서는 이날 보고서 파문을 맹공했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친문 세력이 문 전 대표가 이미 대통령 후보가 됐다는 전제하에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는 방증”이라며 “문 전 대표가 당선되고 보자는 비겁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도 이날 “공당 보고서로 보기엔 너무나 정파적이고 특정 대선 주자 입장에서 작성돼 큰 충격을 받았다”며 “민주당과 문 전 대표의 개헌에 대한 공언과 약속이 허언이었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혁보수신당(가칭) 정병국 창당추진위원장도 이날 창당준비회의에서 “‘제2의 최순실’의 그림자가 문 전 대표 주변에서 어른거린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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