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신고 안하면 처벌’ 위헌성 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영란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된다]<2>곳곳에 위헌 소지
‘친족 행위로 인한 불이익 금지’… 헌법 13조 정면으로 위배 논란
‘직무관련성’ 고무줄 적용 위험도

9월 28일 시행될 예정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은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직자, 교사, 언론사 종사자 등의 아내(남편)가 배우자의 직무와 관련해 누군가로부터 3만 원이 넘는 식사 대접이나 5만 원이 넘는 선물, 10만 원이 넘는 경조사비를 받았는데 공직자 등이 이를 자진해서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공직자 등이 처벌을 받게 된다.

이 조항은 그동안 숱한 존폐 논란을 불러온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10조)보다도 논란의 소지가 더 크다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보법의 불고지죄는 반국가 활동을 한 사람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고하지 않으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조항이다. 인권 침해 소지 때문에 폐지 압박을 받고 있는 이 법도 친족 관계가 있는 경우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도록 규정하는 데 비해 김영란법은 가장 가까운 가족인 부부 사이에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어기면 처벌하도록 해 반인륜적 조항이라는 비판이 일고있다.

이는 연좌제 폐해를 막기 위해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헌법 13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처벌의 대상이 되는 배우자의 금품 수수 규모가 사회 통념상 명백히 뇌물로 여겨지는 거액일 경우에 국한되지 않고, 3만 원 초과 식사처럼 일상의 영역이어서 시행 과정에서 혼선이 우려된다. 예를 들어 공직자의 배우자 쪽에서 상(喪)을 당할 경우 부부 양쪽 모두와 안면이 있는 동향 출신 기업인이 7만 원짜리 조화(弔花)를 보내고, 5만 원의 부조를 했을 경우 신고할 생각을 못 하고 지나갔다가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이 밖에 김영란법에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조항들이 담겨 있다고 많은 전문가는 입을 모은다. 특히 김영란법에 규정된 ‘직무관련성’이 모호한 것은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근본 원칙인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3만 원 초과 음식, 5만 원 초과 선물, 10만 원 초과 경조사비는 처벌 대상이 되는데, 직무관련성에 대한 기준은 김영란법 조항 어디에도 구체적으로 규정된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 등이 직무관련성 범위를 자의적으로 넓게 판단해 단속하는 등 ‘고무줄’ 적용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김영란법은 현재 예상으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여부와 관계없이 9월 28일부터 그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는 법률 전문가가 대다수다. 설령 대한변호사협회의 청구 취지대로 사립학교 교사와 언론사 임직원 포함 부분에 위헌 결정이 나더라도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내용들은 변함없이 시행된다. 김영란법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국회가 헌재 결정 이전이라도 위헌 소지가 있는 미비한 조항들을 보완하는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권오혁 기자
#배우자신고#김영란법#위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