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용관]대통령감을 보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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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정치부장
정용관 정치부장
4·13총선은 ‘박근혜 선거’인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일부 있다는 점에서, 또 박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국회심판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장외 플레이어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박근혜 선거의 성격도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국내 정치에 발을 담글지 안 담글지 모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제쳐 놓더라도 대선을 1년 8개월여 앞둔 상황인 만큼 ‘김무성 선거’이자 ‘문재인 선거’이며 ‘안철수 선거’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김무성, 문재인, 안철수 3인의 정치 행보를 지켜보자니 아쉬움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옥새 파동과 영도 회군을 놓고 이런저런 긍정 부정의 해석이 많지만, 김무성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은 ‘김무성이 그리는 세상’이 뭔지가 도통 안 보인다는 것이다. ‘보수의 혁신’을 말하고 있지만 대체 뭘 어떻게 혁신해서 ‘보수정권 10년’을 더 연장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그는 “국가 운영은 권력게임이다. 권력의 생리를 잘 알아야 하고 권력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박 대통령과의 권력게임은 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부바 퍼포먼스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직 저서가 없는 김무성은 자기 자랑으로 점철된 ‘자서전’이 아닌 다른 방향의 책을 하나 쓰려고 준비 중이다. 아마도 대선을 염두에 둔 책일 것이다. 김무성의 고민과 철학, 권력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권력게임의 목표, 즉 그만의 국가 비전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지금껏 해온 대로 차라리 안 쓰느니만 못하다.

문재인도 그렇다. 김종인에게 비상 대권을 부여한 것을 놓고 한때 야권 진영에서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가 진짜 오너는 자신이라는 조급함을 금세 드러내고 말았다는 세간의 평가는 논외로 치자. 점점 보폭을 넓히고 목소리를 높여 존재감을 입증하려는 것도 이해는 간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의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직접 나서서 안철수를 향해 공개적으로 단일화 공세를 펴는 건 영 보기 불편하다. 총선에서 패할 경우 책임론을 피하려는 포석인지는 모르나 마치 “나는 홀로 설 수 없는 정치인”이라고 스스로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2012년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안철수에 대한 단일화 압박은 염치(廉恥)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문재인이 안철수를 위해 양보한 게 하나라도 있었던가? 당장 계란을 맞더라도 당당하게 호남부터 찾고, 눈앞의 총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대정신을 만드는 것부터 고민할 일이다.

안철수는 모처럼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이며 두 덩치의 틈에서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선 평가할 만하다. 그의 목표대로 40석에 육박할지, 원내 교섭단체를 간신히 구성할지, 그 밑으로 추락할지 예단할 수 없지만 3당 정립체제 구축에 어렵사리 성공하더라도 ‘의석의 질’이 문제다. 그는 어제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대권병이라는 말은 저한테는 해당되지 않는다”면서도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했다. 글쎄다. 권력의 생리를 아직 깊이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권력의 이동은 계절의 변화와 같다고 어느 정치평론가는 말했다. 청와대는 가능한 한 차기 주자들의 부상을 늦추고 싶겠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대통령감이 잘 안 보인다는 말이 많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국가지도자의 자질, 즉 비르투(Virtu)를 지닌 대통령감 말이다. 3인 중에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을 사람이 나올지, 새로운 다크호스가 등장할지 궁금하다. 만 30년을 맞는 1987년 권력구조의 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분출할지도 모르겠다. 유례없는 공천 파동을 겪은 정치부 기자들은 총선 이후 더 바빠질 것임에 틀림없다.
 
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413총선#옥새파동#영도회군#공천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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