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은 스케이트 타고 씽씽… 예비후보는 살얼음판 걸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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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없어진 첫날 대혼란]

“8일에도 선거구 획정이 안 될 수 있는 거죠?”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저. 서울 성동갑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전 대통령에게 신년 인사를 하러 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만나자 선거구 획정부터 물었다. 김 대표는 “그렇지!”라고 짧게 대답했다고 한다.

현역 의원들의 직무유기로 이날 0시를 기해 전국 246개 선거구가 법적으로 사라졌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8일까지도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으면 편법이 또 다른 편법을 낳는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선거구가 없어져 법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예비후보자들에게 일시적으로 선거운동을 허용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8일 이후에도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으면 또 다른 편법 대안을 마련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도 여야는 서로를 비난하며 ‘폭탄 돌리기’만 하는 형국이다.

○ “미치고 팔짝 뛸 심정”


진 전 장관은 “요즘 미치고 팔짝 뛰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새벽부터 응봉산에서 명함을 돌리고 왔다는 그는 “여성 및 정치 신인들에게 당 공천 경선 시 가산점을 준다지만 말짱 ‘꽝’”이라며 “예비후보자들에겐 유권자를 접촉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진 전 장관은 “인구 하한 미달 지역인 서울 중구와 성동구가 합쳐질 경우 선거구가 3개에서 2개로 줄면서 적게는 8만 명, 많게는 14만 명까지 새로운 유권자를 만나야 한다”며 “나도 (18대) 의원 출신이지만 19대 국회의원들은 너무 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비후보들은 ‘깜깜이 선거’에 속만 태우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 분구 지역을 노리고 강남갑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은재 전 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안한 대로 지역구가 현행 246개로 묶이면 강남구 일부 동(洞)이 송파구에 붙는 대신에 지역구 분구는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이 전 의원은 “강남구와 송파구는 문화권이 다르다”며 “강남구 일부를 송파구와 합치면 최악의 게리맨더링(정략적인 선거구 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 원주갑 예비후보인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은 1일 아예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선관위는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스스로 합법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박 전 대변인은 “예비후보자들은 살얼음판을 걸어가고 있는데, 현역 의원들은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날이 바짝 선 스케이트를 타고 빙판을 달리고 있다”며 “차라리 무능한 국회를 해산하라고 호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선거구 획정이 하염없이 지연되는 건 조정 대상 지역구 현역 의원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당장 정 의장이 중앙선관위 산하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에 구체적 획정 기준을 제시하자 지역 의원들이 집단 반발했다. 지역구가 강원 춘천인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장에게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해 달라고 위임한 적이 없다”며 “농촌지역이 도시와 묶이면 농촌지역은 더 소외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현역 의원들끼리는 자기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들은 ‘도전과 응전’ 앞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이다.

선거구획정위는 2일 전체회의를 열어 정 의장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획정안을 논의한다. 하지만 획정위는 ‘독립 기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여야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9명의 획정위원 중 위원장인 중앙선관위 김대년 사무차장을 제외한 8명이 여야 성향으로 4명씩 갈리면서 사실상 여야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에도 지역구 246개를 기준으로 획정안을 논의했으나 영호남 의석 배분을 두고 충돌해 획정안을 의결하지 못했다. 획정위까지 정치권의 ‘아바타(분신)’를 자처할 경우 ‘선거구 획정 공백’은 출구 없는 미로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고성호 sungho@donga.com·홍수영 기자
#현역의원#예비후보#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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