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체제 고생길 뻔해 귀순… 황장엽式 활동은 사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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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북한 권력]
北 해외주재관 3년간 46명 입국… 탈북 엘리트 ‘달라진 트렌드’

요즘 북한 귀순자가 기자회견장에서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보기 어렵다. 최근 탈북자들은 귀순 자체를 비밀로 하고 싶어 한다. 국가정보원이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근 3년간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북한 해외주재관이 46명에 이른다고 밝히자 많은 사람이 숫자에 놀랐다. 해외주재관의 탈북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3년 8명에서 2014년 18명, 올해는 10월까지 20명이다. 이들 중에서 얼굴을 드러낸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왜일까. 해외주재관을 비롯한 고위급 탈북자들의 변화된 트렌드를 짚어 본다.

○ 다양해지는 탈북 동기

중국에 외화벌이를 위해 나온 북한 간부 A 씨는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새파랗게 어린 김정은이 올라서니 정말 미래가 막막하다. 지금까지 우리도 잘살 날이 있을 줄 알고 견뎠는데, 이제 또 몇십 년 더 고생할 게 뻔하니 목숨 걸고 자유세상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탈북한 북한 엘리트들은 이구동성으로 미래를 이야기한다. 부패가 드러날까 처벌이 두려워 탈북하는 경우가 많았던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 A 씨는 “해외에 나온 북한 엘리트들은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북한에서 제일 깬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도 간접 체험한 이들은 북한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앞으로도 탈북 사례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수년 전 탈북한 북한 외교관 출신인 B 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체제를 비판하다 들킨다든지 중한 범죄를 저질러 탈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다르다”며 “자식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 탈북했다는 외교관도 있고 해외에서 김 씨 일가의 실체를 알게 돼 환멸감 때문에 탈북했다는 사람도 봤다”고 했다.

최근 귀순하는 해외주재관들의 사례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외화벌이’ 과제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다 탈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김정은 체제 들어 각종 치적 공사가 크게 늘면서 매년 당국에 바쳐야 하는 달러 액수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간부로 있다가 탈북한 C 씨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해 본국으로 소환될 위기에 처해 탈북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 “꽁꽁 숨어라”

최근 입국하는 탈북 엘리트들의 경우 대다수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요즘은 국정원이 과거처럼 귀순자들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기자회견장에 내보내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원할 경우 얼마든지 노출을 피할 수 있다.

최근 탈북한 고위급 탈북자 D 씨는 “북한에 남은 가족 친척 때문”이라고 했다. 귀순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해외에서 사라지면 북한 당국은 관례적으로 행방불명자로 처리하는데, 이 경우엔 가족에 대한 처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설사 한국으로 간 사실이 드러난다고 해도 조용히 숨어 사는 사람들에 대해선 가족에 대한 처벌이 매우 경미하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최근 들어 국제사회에서 제기하는 인권 문제 때문에 탈북한 엘리트들의 가족을 쉽게 처벌하지 않는 것도 이들이 탈북을 결심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탈북자 E 씨는 “해외주재관들의 경우 친인척 중에 고위 간부가 많아 집안 배경이 좋은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 중에서 탈북자가 생겼다고 가족까지 처벌하면 숱한 간부를 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또 다른 탈북자는 “북한 당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것은 남쪽으로 간 탈북자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건드리는 것인데 이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가족들이 피해 보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많은 고위층 탈북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노동당 부실장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었다. 기자와 접촉한 적잖은 탈북 엘리트들은 “북한 체제를 바꾸겠다고 남한에서 아무리 참상을 고발하고 노력해봐야 성과도 별로 없고 오히려 피해만 보니 그냥 남한에 숨어서 조용히 사는 게 최고”라고 했다.

○ 탈북 대신 남쪽에 정보 제공

요즘은 탈북 대신 남쪽에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는 북한 엘리트가 많은 것도 달라진 변화다. 여기에는 한국 정부가 고위급 탈북자를 환대하거나 이들에게 직업을 알선해주는 등 생활을 돕는 일을 더이상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게 이유로 꼽힌다.

한 탈북자는 “탈북해서 정보를 제공해도 어느 정도의 보상은 받지만 많아야 수천만 원 선”이라며 “남한 정부에서 직업을 알선해주는 ‘특혜’는 소수에게만 돌아간다. 그것도 국책연구기관 정도다. 북한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해 막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국정원도 북한 고위급의 탈북을 적극 유도하지도 않고 오히려 북한에 남아 있으면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했다.

한편 해외에서 외화벌이를 하다 탈북한 사람들의 경우 그동안 몰래 숨겼던 돈을 고스란히 갖고 오는 사람도 적지 않아 탈북자 사이에도 빈부격차가 생기고 있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서 직책이 비슷했더라도 얼마를 갖고 왔느냐에 따라 한국에서 월세 사는 사람, 전세 사는 사람,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귀순#황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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