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친동생이 쓴 1억짜리 수표 결정적 증거로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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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前총리 실형 확정]법정다툼 5년만에 유죄 최종판결

한명숙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71)은 헌정 이후 국무총리를 지낸 40명 가운데 처음으로 실형이 확정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한때 차기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됐던 한 전 의원은 이번 판결로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 동생이 쓴 1억 원짜리 수표가 발목

한 전 의원의 정치인생은 친동생이 전세자금으로 쓴 1억 원짜리 자기앞수표 한 장이 발목을 잡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1억 원짜리 수표를 한 전 의원 친동생이 쓴 사실을 결정적인 유죄 증거로 판단했다. 한 전 대표가 2007년 3, 4월경 한 전 의원의 아파트 근처 도로에서 캐리어에 현금 1억5000만 원, 5만 달러와 함께 담았다는 이 수표를 한 전 의원 친동생이 썼다는 점에서 3차례에 걸쳐 9억여 원을 줬다는 그의 검찰 진술이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당초 검찰에서는 돈을 건넨 과정을 상세히 진술했다가 1심 재판 때부터 돌연 부인했다. 하지만 문제의 1억 원짜리 수표와 함께 한 전 의원이 2008년 2월 회사 부도 충격으로 입원한 한 전 대표를 찾아간 직후 2억 원을 돌려준 사실도 증거가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억여 원 중 수표 1억 원과 돌려준 현금 2억 원 등 총 3억 원에 대해선 전원 일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나머지 6억여 원에 대해선 대법관 13명의 견해가 유죄 8명, 무죄 5명으로 갈렸다.

○ 반전에 반전 이어진 사건

한 전 의원은 2009년 12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뇌물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이듬해 7월 이번 사건으로 또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한 전 의원은 “정치적 탄압”이라며 검찰 출석을 거부했다. 검찰도 이례적으로 직접 조사 없이 한 전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한 전 의원은 재판에서도 검찰 심문 때마다 성경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

5만 달러 뇌물 사건이 2013년 3월 무죄가 확정되면서 “검찰의 표적수사”라는 야당 주장이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게다가 이번 사건도 1심에선 무죄가 선고되자 야당은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해 한 전 의원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진술밖에 없었던 5만 달러 뇌물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물증이 명백했다는 판단이다.

○ 민주투사에서 부패 정치인으로

한 전 의원은 말레이시아 출장을 떠났다가 19일 귀국했지만 이날 대법원에 나오지 않고 선고 직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정치탄압의 사슬에 묶인 죄인이 됐다”며 “역사는 2015년 8월 20일을 결백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날로 기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에는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등 새정치연합 의원 21명이 출동했다. 문 대표는 재판 직후 “정말 참담한 심정이다. 이번 사건은 돈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는 판결”이라며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한 전 의원에게 2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검이나 서울구치소로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한 전 의원 측은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고 병원에도 가야 해 검찰에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 전 의원 수감은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초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확정 판결이 나면 바로 구치소에 수감할 수 있지만 통상 유력 인사에겐 신변을 정리할 시간을 3, 4일가량 주는 게 관례다. 한 전 의원은 서울구치소로 갔다가 수형자 분류 작업을 거쳐 교도소로 옮겨진다. 한 전 의원은 1970년대 유신반대 투쟁을 한 민주투사로 2년 6개월간 훈장 같은 수감 생활을 했지만 두 번째 옥살이는 부패 정치인으로서 2년을 보내게 됐다.

한편 한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비례대표 22번인 신문식 전 민주당 조직부총장이 의원직을 승계한다.

조동주 djc@donga.com·신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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