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용]유럽까지 날아가 ‘지상파 나팔수’ 나선 의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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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산업부
김기용·산업부
지난 주말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 뉴스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방송연맹(EBU)을 시찰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등장했다. 보도 주제는 700MHz(메가헤르츠) 주파수 대역을 지상파 방송사에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찰에 참여한 홍문종(새누리당), 문병호(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주제를 뒷받침해 주는 인터뷰까지 했다.

아직 용도가 확정되지 않은 700MHz 주파수 대역 분배 문제는 이동통신사와 지상파 방송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동통신사는 급증하고 있는 통신 트래픽 해소를 위해, 지상파 방송사는 국제사회에서 초고화질(UHD) 방송을 선점하기 위해 700MHz 주파수를 원하고 있다.

이날 뉴스에는 EBU의 피터 매커보크 본부장이 나와 “한국 지상파들이 UHD 서비스를 위해 700MHz 주파수 대역을 희망하는데, 유럽 역시 해당 대역폭을 계속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유럽은 700MHz 대역을 이미 통신에 배분했는데, 유럽 방송사들은 이 대역을 계속 사용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6월과 12월 700MHz 대역을 통신에 배분하기로 했다. 영국은 이미 지난해 11월 이 대역을 통신으로 활용한다고 선언했다.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도 11월 ITU 전파통신 부문 최고회의(WRC-15)에서 700MHz 대역을 통신이 활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확정할 방침이다.

700MHz 대역이 통신에 배분되는 것이 유럽의 대세다. 그러나 방송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EBU가 700MHz 대역을 계속 사용하고 싶다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국회의원들이 현지에서 “우리도 유럽처럼 700MHz 대역을 방송에 배분해야 한다”는 취지로 인터뷰한 것은 유감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나팔수’를 자임한 것에 다름 아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선거에서 표 계산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지역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문가들을 투입해 1년간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700MHz 대역은 통신용으로 활용할 때 경제성이 크기 때문에 UHD 방송 시범서비스는 2017년 이후가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내 모바일 트래픽 급증으로 통신용 주파수를 당장 확보해야 하는 긴급성이 더 크다는데도 의원들은 이런 객관적 사실마저 무시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방송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회의원들마저 표 계산에 내몰려 진실을 외면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김기용·산업부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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