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장관들’ 산하기관 서울사무실 공짜 사용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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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위기의 정치]
靑-국회 업무위해 서울 올때 이용… 선주協 소유 빌딩 쓰는 해수부 장관
보증금없이 하루 4만8000원에 빌려… 감독대상과 관행처럼 유착관계

세종시로 이전한 정부 부처 장관들이 서울에 있는 산하 공공기관 내 집무실을 공짜로 빌려 써온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의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장관이 선사들의 협회인 선주협회가 소유한 해운빌딩 집무실을 보증금 없이 빌려온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다른 부처 장관들도 무료 사무실을 통해 산하기관과 유착관계를 유지해 온 셈이다.

30일 동아일보가 2012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세종시로 청사를 옮긴 부처들을 대상으로 장관들의 서울 집무실 운영 현황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부처가 서울의 산하기관이나 민간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부처들은 청와대 보고와 국회 업무가 많아 서울 여의도지역과 광화문 일대에 사무실을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 영등포구 은행로 수출입은행과 중구 청계천로 예금보험공사에 2개의 사무실을 두고 있다. 국회 일정이 있을 때 주로 이용하는 수출입은행 사무실의 경우 임대료를 내지 않는다. 기재부 당국자는 “장관 집무실과 부속실이 있는 정도의 작은 공간으로 상시 사용하는 장소가 아니어서 별도 임대료를 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업무가 없을 때는 주로 예보 사무실을 이용한다. 30평 남짓한 규모로 지난해 5월부터 시세 수준의 임대료를 예보에 내고 있다.

이주영 해수부 장관은 현 부총리 사무실이 있는 수출입은행에서 500m 떨어진 해운빌딩 10층에 집무실을 두고 있다. 1일 4만8000원 기준의 월세를 건물주인 선주협회에 내고 있지만 보증금은 없다. 해수부는 장관 집무실이 다른 사무실보다 작고 월세가 밀릴 가능성이 낮아서 빌딩주가 보증금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무실이 소규모라거나 임차인의 신분이 확실하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면제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부동산 상식과 맞지 않는 해명이라는 지적이 많다.

청와대 보고와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가 많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한국생산성본부 5층의 회의실을 무료로 집무실로 이용하고 있다. 생산성본부는 산업발전법에 따라 출범한 특수법인으로 정부 출자금이 없고 민간과 경쟁하며 수익을 내야 하는 단체다. 무료로 사무실을 임대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셈이어서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인 대한주택보증은 11층 회의실을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집무실로 빌려주고 있다. 장관 집무실 옆의 대회의실에서는 실무 국장들이 가끔 업무를 본다. 국토부는 대한주택보증 사무실에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 장관은 국회에 약속이 없을 때는 지하철 4호선 동작역 근처에 있는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업무를 본다. 홍수통제소는 국토부 소속기관이어서 무료 사용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세종시 부처들이 서울 집무실을 1, 2개씩 무료로 빌리는 데 대해 산하기관들은 “일하기 불편하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장관과 국, 과장들이 한꺼번에 오면 전체 직원들이 긴장하게 된다”며 “‘상전’이 항상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압박감이 크다”고 말했다.

관료 출신의 낙하산인사가 반복되면서 정부 부처가 산하기관 사무실을 무료로 빌리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참여하는 한 재정 전문가는 “정부가 공공기관과 거리를 두지 않고 사실상 유착해 온 관행을 이어가면 공공기관 개혁의 강도를 높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
김희균·유근형 기자
#세종시#이주영#현오석#해양수산부#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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