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완준]‘최고 존엄’만 나오면… 北의 비정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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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정치부
윤완준·정치부
북한은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불과 나흘 앞두고 일방적으로 연기를 통보했다. 그때 북한이 내세운 이유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금강산 관광 관련 보도를 한 한국 언론이 자신들을 중상모략했다는 주장이었다. “악랄한 남조선(한국) 보수패당의 대결 소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북한)의 존엄과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고 우리를 해치려는 대결망동을 묵인할 수 없다”는 위협도 덧붙였다.

5개월 만인 이달 6일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를 합의한 지 24시간 만에 ‘최고 존엄에 대한 비방 중상’을 거론하며 또다시 합의 불이행을 위협했다. 이번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구두를 신고 육아원 방에 들어가 앉은 모습’을 한국 언론이 꼬집은 보도를 문제 삼았다.

북한 체제, 특히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비판이라면 아무리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일지라도 ‘최고 존엄 모독’이니 ‘비방 중상’을 거론하며 남북관계 파행을 위협하는 비정상적 관행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면서도, ‘유일 영도자’의 심기를 건드리면 어떤 약속이든 언제라도 깰 수 있는 북한 체제의 모순적 한계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의도는 헤어진 혈육을 만나기 위해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인질로 잡아 남남갈등을 일으키려는 대남 선전선동 차원이란 분석이 많다.

그러나 남남(南南)은 분열되지 않았고 여야가 한목소리로 북한을 비판했다.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7일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하거나 무산시키면 최근의 평화 공세가 진정성 없는 위장 선전 공세라는 것을 만천하에 자인하는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 전적으로 북한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수현 원내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북한이 한미 연합군사연습(키리졸브) 중지를 요구하며 상봉행사를 재고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유감스럽다. 북한은 기다릴 시간이 없는 이산가족의 만남을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도 “키리졸브는 북한도 상봉 성사와 관련해 별다른 조건을 달지 않았던 일이다. 합의 다음 날 재고를 말하는 것은 상호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은 남남분열을 노린 선전선동에 맹목적으로 동조할 세력의 자리가 한국 사회에서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윤완준·정치부 zeitung@donga.com
#이산가족상봉#북한#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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