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계 인사들의 “내가 바라는 공약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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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권자다… “응답하라 朴-文-安” 두번째 이야기

《침묵하는 유권자가 나쁜 정치인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유권자는 소리칠 권리가 있고, 정치인은 이를 경청할 의무가 있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함께 동아닷컴(www.donga.com)에 ‘나는 유권자다’ 사이트(news.donga.com/2012president/promise)를 개설한 이유다.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내고 공약을 제안할 수 있는 이 사이트에는 12일 현재 882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마감은 이달 24일까지. 좋은 의견을 낸 분에게는 소정의 상금도 지급한다. 동아일보는 문화계와 체육계 인사들에게 ‘내가 대선후보들에게 바라는 공약’을 물었다.》
뮤지컬 ‘어쌔신’의 연출가로 깜짝 데뷔한 배우 황정민 씨는 대선후보들에게 직장인들의 회식을 술 대신 문화생활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황 씨는 “법인카드로 단체 문화공연을 관람할 경우 할인혜택을 주거나 세제혜택을 주면 직장인들의 회식문화가 확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더욱이 문화예술계도 간접적으로 지원을 받는 셈이니 일석이조라는 얘기다.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김지영 씨는 공교육에서 예체능 교육을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 씨는 “공교육에서 예체능 교육을 소홀히 하다보니 예체능 교육을 사교육이 담당하게 되고, 결국 예술을 시키려면 돈이 든다는 생각이 퍼져 웬만한 집에선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에서 예체능 교육이 바로 서면 예술 분야 인재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인교육도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09년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아시아 최초의 남자 메이저 챔피언이 된 프로골퍼 양용은 씨는 주말 골퍼들의 숙원을 풀어줄 것을 대선후보들에게 제안했다. 바로 골프장 그린피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를 감면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골퍼가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할 때 내는 개별소비세는 카지노의 4배, 경마장의 23배에 이른다고 한다. 양 씨는 “사실 프로골퍼는 개별소비세를 내지 않지만 골프 대중화를 위해서는 일반 골퍼들이 지불하는 개별소비세를 낮춰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유권자다’ 사이트에 제안을 올린 박제완 씨는 “장애인 운동선수들은 길면 1년, 짧으면 6개월 정도 훈련을 하고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에 출전하고 있다”며 “더욱이 고가의 장비도 자신이 직접 구입하고 훈련도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다. 대선후보들이 비장애인과 장애인 스포츠정책의 균형을 맞춰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스포츠강국 위상 걸맞은 새 체육회관 절실” ▼


2012 런던 올림픽이 끝난 지 석 달 가까이 되었지만 그때의 감동이 아직 느껴진다.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5위를 달성한 것은 한결같은 국민의 성원과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여름·겨울 올림픽 등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세계 10위권의 체육 강국의 입지를 다져왔다.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국위선양과 국민통합에도 체육 분야가 항상 앞장서 왔다. 그에 반해 그동안 우리나라의 체육행정 인프라는 다소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스포츠강국을 넘어 진정한 스포츠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체육행정의 선진화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현재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 각 중앙경기단체가 입주해 있는 올림픽회관은 너무 협소할 뿐 아니라 많은 경기단체가 입주하지 못해 유기적인 업무추진이 어렵다. 이렇다 할 스포츠종합행정센터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은 새로운 체육회관의 건립이다.

체육행정의 원활한 지원을 위해서는 대한체육회와 각 종목별 중앙경기단체, 체육 관련 유관단체가 한데 모일 수 있는 종합행정센터의 건립이 필요하다. 또 체육인의 자긍심과 역사 보존을 위한 ‘체육인 명예의 전당’과 체육박물관을 위한 공간 확보도 시급하다.

현재 국가 총예산에서 차지하는 체육예산의 비율은 0.05%정도다. 체육회관 건립과 체육인 복지향상을 위해서는 먼저 체육재정 증원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유치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여름·겨울 올림픽을 동시에 유치한 8번째 나라가 됐다. 2002 월드컵과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 개최하면서 명실상부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국가다. 이제 이런 국내외적인 스포츠강국의 위상에 걸맞은 외형의 구축과 내실의 강화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 김혜경 도서출판 푸른숲 발행인 “묻습니다! 출판지식산업 정책은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책이 사라진다면? 우리 곁에 책이 없다면? 절박한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해본다. 정전이 되어야 전기의 고마움과 필요성을 절감하듯 요즘에는 늘 주변에 책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책을 구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때로는 책의 존재가 잊혀진다. 우리는 책으로 공부를 하고 거기에서 지식과 위로를 얻는다. 우리가 즐기는 영화, 연극, 뮤지컬 등 거의 모든 문화예술 장르가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출판 산업은 현재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몇 년간 극심한 시장 침체로 도·소매점의 부도와 폐업이 속출하면서 출판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분명 문화생태계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책 읽기가 스마트폰과 게임, 입시 등으로 인해 뒷전으로 밀리면서 독서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특히 20대 젊은 세대가 책을 읽지 않아 독서 인구의 노령화가 염려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사고력과 글 읽기 능력의 저하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20년 후, 30년 후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 이유다. 인력이 가장 소중한 이 나라가 변화무쌍할 21세기에도 국력을 증강시키려면 무엇보다 국가 구성원의 지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산업화 초기에 도로와 항만, 철강 등 기간산업이 필요했듯 이제는 출판 산업이 기간산업으로 육성돼야 한다.

대선후보들께 묻는다. 얼마나 자주 책을 읽는가? 깊은 사고와 통찰, 지혜의 힘을 어디서 얻는가? 지난 5년간 뒷걸음친 국가의 지력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릴 것인가? 출판 산업을 진흥해 나라의 부강을 확고히 할 때다.
▼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감동 부족의 시대… 예술영재학교 만들자”

참으로 메마른 시대다. 진정한 소통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통의 핵심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진심’과 그 과정에서 비롯된 ‘감동’과 ‘교감’인데 이런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함도 이유일 것이다.

예술콘텐츠가 개인과 기업,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것은 예술의 ‘창조’적 성질과 더불어 ‘감동’이라는 속성 때문일 것이다. 예술이 다른 분야의 교육적 도구나 광고 등에 많이 활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양질의 예술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는 참된 예술가를 키우려면 개인의 탁월한 예술적 재능도 필요하지만 이를 충분히 꽃피울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음악과 발레와 같은 공연예술 분야는 조기교육이 절실하다. 예술성이 악기 등의 매개체를 통해 재창조되려면 내면적 심화와 고도화된 기술적 표현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또래에 비해 탁월한 예술적 성취도를 보이는 예술영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적합한 교육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경제적 여건 등으로 꿈을 펼칠 수 없는 아이가 많다. 국가 차원의 예술영재학교를 설립해 이들을 따뜻하고 훌륭한 품성을 가진 예술가로 성장시킨다면 이들이 창출할 작품은 분명 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덧붙여 현재 해외 유명 콩쿠르에 입상하면 병역특례를 주는데, 국내 콩쿠르 입상자들에게도 병역특례를 주거나 군에서도 음악이나 무용 등을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 또 국내에 제대로 된 전용 홀을 가진 오케스트라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오케스트라 지원과 육성에 관한 법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꿈을 반쪽으로 만드는 문-이과 구분 없애야” ▼

아직도 악령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 악령은 하도 오래 우리 등에 들러붙어 있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부가 된 듯하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이 악령의 이름은 문·이과 구분이다. 좀 더 우아하게 인문계와 자연계라고도 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만 존재하는 악령은 20여 년 전 교육과정 개편 때 교육부 문서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바로 오늘 각 대학의 입시요강에 버젓이 살아있다. 대학입시에 살아있으니 고등학교 교육에서도 사라질 수 없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문과인지 이과인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근거로 그 이른 시기에 일도양단의 결론을 강요하는 걸까. 한참 미래를 꿈꿔야 할 시기에 세상의 절반을 야만적으로 도려내고 그 안에서만 자신의 미래를 들여다보라는 이 사회의 미래는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모든 인간은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문·이과 구분은 그런 점에서 체벌보다 무자비한 학생 인권 유린이다. 지금 세상은 융합과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등학생들에게 세상의 절반만 선택하라고 테두리를 치는 것이다.

대선후보들마다 대학의 반값등록금을 공약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서둘러야 할 것은 대학의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절반으로 위축시키는 야만의 제도를 거두는 것이다. 정부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대학을 퇴출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미래가 없는 대학은 취업률이 낮은 대학이 아니고 인습적으로 입시요강에 인문계와 자연계를 구분하는 대학이다.

전자공학, 법학,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그들이 바로 이 구분의 문제에 대한 실증이고 피해자들이다. 누가 되든 이 악령을 거두기를 기대한다.

[채널A 영상] 대선주자는 표심잡기-영화사는 홍보…‘이심전심’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나는유권자다#공약#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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