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성향 원로그룹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의 좌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27일 “원탁회의는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론’을 제안한 적이 없다”며 “원탁회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말했다. 원탁회의가 25일 모임에서 민주통합당의 이해찬 상임고문과 박지원 최고위원이 차기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나눠 맡도록 ‘역할분담론’을 권고했다는 ‘설(說)’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백 교수는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원탁회의가 당내 일에 월권한 것으로 비쳐 당황스럽다”며 “계파 싸움을 비판하고 야권이 선거연대를 하라는 원칙적인 말은 해도 당직을 누가 맡고 어떻게 배분하라는 제안은 원탁회의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원탁회의도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원탁회의는 민주당의 내부 경선과 관련한 논의를 한 바 없으며 25일 원탁회의 오찬도 그런 논의를 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26일까지도 백 교수는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론’의 주요 제안자로 여겨졌다. 박 최고위원이 이날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이 고문이) 25일 원탁회의 20여 명과 많이 논의한 끝에 원탁회의의 공동 의견을 전해 줬고, 나도 확인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고문도 박 최고위원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 교수에 따르면 그날 원탁회의 오찬 모임은 “원탁회의 멤버인 이 고문이 4·11총선에서 갑자기 세종시에 출마해 멤버들에게 제대로 인사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전하고 인사하기 위해 초청한 자리”였다. 약 20명의 멤버가 모였지만 역할분담론을 의제로 올리거나 원탁회의의 이름으로 제안할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고문은 가까운 자리에 앉은 멤버들이 “당이 단합해야 한다, 정신 차려야 한다”고 하자 “박 최고위원과 손잡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백 교수는 전했다.
백 교수는 “이 전 총리 주위에 앉은 일부 멤버가 ‘어 좋겠네, 잘해봐라’는 격려성 덕담을 건넸지만 누가 당대표가 되고 원내대표가 될지를 참석자들이 얘기할 성격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참석자 상당수는 역할분담론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원탁회의 멤버인 박재승 변호사는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시종 자리를 지켰지만 그런 얘긴 없었다”며 불쾌해했다. ▼ 백낙청 “박지원에게도 원탁회의 제안 아니라고 밝혀” ▼
이 때문에 이 고문이나 박 최고위원이 ‘이해찬-박지원 투톱 체제’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탁회의의 권고’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박 최고위원의 말이 맞는다면 이 전 총리가 25일 원탁회의 오찬 뒤 박 최고위원을 만나 거짓말을 한
셈이고, 그게 아니라면 박 최고위원이 언론에 거짓말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원탁회의 오찬 직후인 25일 오후 3시경
만나 무슨 말을 나눴는지가 밝혀지면 문제가 풀리지만 여기에 대해선 양측 간에 진술이 엇갈린다.
백 교수는 “박
최고위원에게도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나중에 박 최고위원과 통화해 ‘원탁회의가 그렇게 얘기한 게
아니다’라고 말하자 박 최고위원이 ‘이 고문이 그렇게 말했다’며 (책임을) 미루더라”고 말했다. 그는 “박 최고위원에게 ‘원만하게
잘하라’란 말은 했지만 그 해법은 정치인들이 찾아야지 내가 제시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고문 측은 “이 고문이 원탁회의 참석자들에게 구상을 얘기하니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이어서 그런 분위기를 전달했는데 박 최고위원이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 같다”고 책임을 돌렸다.
백 교수는 “이번 일로 원탁회의가 이상하게 돼 버렸다”고 탄식했다. 원탁회의에 대해 “당 밖 그룹이 당직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월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고문과 박 최고위원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원탁회의를 이용하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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