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새누리당의 서울 은평을 공천 후보자로 확정된 이재오 의원이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동료 의원과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27일 오전 9시 국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장. 정홍원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과 권영세 사무총장이 1차 공천안을 직접 보고하기 위해 들어섰다. 그러나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마자 김종인 비대위원은 “비대위원들끼리 논의하자”라며 정 위원장과 권 총장, 당직자들에게 회의장에서 나가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예상치 못한 김 비대위원의 그 제안은 하루 종일 당을 시끄럽게 한 ‘이재오 공천 논란’의 서막이었다. ○ 비대위-공천위 힘겨루기 양상
정 위원장과 권 총장이 회의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이 회의장 내에선 이재오 의원의 공천 문제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김 비대위원은 비공개 회의에서 “이재오 의원을 공천할 경우 (이 의원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에선 이길지 몰라도 전체 선거 구도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반대했고, 이상돈 조현정 등 외부 비대위원들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공천안”이라고 가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30여 분 뒤 회의장에 불려 들어간 정 위원장과 권 총장이 공천안을 설명했지만 외부 비대위원들과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정 위원장은 비대위 논의가 끝나기 전인 오전 10시 반경 국회 기자실을 찾아 1차 공천안을 발표했다. 이에 비대위는 공천위의 1차 공천안에 대한 재의(再議)를 요청했고, 당 안팎에선 “비대위가 이재오 죽이기에 나섰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천위도 물러서지 않았다. 비대위의 재의 요청 4시간 반 뒤인 오후 3시 반 공천위 참석자 만장일치로 원안을 확정한 것이다. 당헌 48조에 따르면 최고위 역할을 하는 비대위는 공천위가 심사한 사항을 의결하거나 재의 요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대위의 재의 요구에도 공천위의 재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비대위는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
권 총장이 공천위의 원안 재의결 후 외부 비대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이해를 구했다. 일단 봉합됐지만 앞으로도 갈등의 소지는 크다. 공천안 발표 시기를 두고도 “앞으로 비대위와 논의하지 않고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정 위원장과 “발표 이전에 비대위에 사전 보고가 있어야 한다”는 외부 비대위원 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 의원은 자신의 공천 논란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공천 확정 후 국회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황우여 원내대표, 권영세 사무총장 등 동료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웃음을 지었지만 때때로 착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4년 전 18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수도권 등의 한나라당 공천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던 그로선 권력무상을 실감케 한 하루였다. ○ 박근혜 리더십 손상
박 위원장은 외부 비대위원들이 뭉쳐서 공천안에 대해 비토 의사를 밝힐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공천위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박 위원장은 과거 당 대표 시절 도덕성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한 공천위 결정을 뒤집은 적이 없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 회의가 끝난 뒤 굳은 표정으로 “오늘은 말씀드릴 게 없다”며 퇴장했고, 위원들에게 비대위 비공개 내부 회의 내용에 대해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친이(친이명박)계 일각에서는 비대위원의 이 의원 비토 움직임에 대해 박 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 1차 공천안 친이·친박 안배
공천위가 의결한 1차 공천안에 포함된 21명은 단수 후보 신청 지역 중 검증이 덜 끝난 호남 지역과 전략공천 지역으로 포함된 서울 서초갑을 제외한 대부분이 포함돼 있다. 친이계 전재희 차명진 윤진식은 물론 친박(친박근혜)계도 다수 포함됐다. 김덕룡 전 의원이 “4년 전의 정치 보복적인 공천 학살이 또다시 반복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쳐 버릴 수 없다”고 비판했지만 1차 공천자는 예상했던 단수 후보자가 공천을 받은 탓에 파장이 적었다. 공천 갈등은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공천이 배제될 하위 25%의 현역 의원에 대한 윤곽이 나오고 추가 전략 공천 지역이 발표되는 다음 주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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