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품격 떨어뜨린 ‘봉숭아 외통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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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 질의-매국노 비난-무단이탈 논란-비공개 인사 유출
정몽준 의원 “무슨 궤변이야”… 金외교 질타뒤 뒤늦게 사과

19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정감사는 하루 종일 ‘반말’ ‘매국노’ ‘무단이탈’ ‘비공개인사 유출’ 등의 소동으로 ‘봉숭아 학당’ 같은 수준을 보였다. 이날 외통위에서 일어난 잇단 해프닝은 국가의 외교정책을 생산하고 감시하는 외통위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감에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시기를 지적하며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몰아세웠다. 다음 달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핵안보정상회의의 일정 변경을 협의할 것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건의하라고 얘기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내년 3월 26, 27일에 열리며 총선은 2주일 뒤인 4월 11일 치러진다.

정 전 대표는 “총선 전에 회의를 개최해 공연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김 장관이 “외교는 국내정치와 연계하지 않는다”고 답하자 그는 반말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2, 3배 되는 회의를 총선 직전에 하겠다는 거야? 장관,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궤변을 늘어놓는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라며 “국내정치와 상관없다는 게 자랑이 아니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관(당신) 같은 사람이 장관을 하니까 외교부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도 했다. 논란이 일자 정 전 대표는 이날 오후엔 “오전에 거친 발언으로 결례해 미안하다”며 질의를 시작했고 발언이 끝난 뒤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이날 오후엔 민주당 김동철 의원이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주한 미국대사관 외교전문에 등장한 정부 관료를 ‘매국노’로 지칭하자 여야 의원들이 고성을 지르며 싸워 감사가 중단됐다.

전문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5일 안총기 당시 외교부 지역통상국장은 미국대사관 관계자에게 “(광우병 발생 10년이 안 된 국가 쇠고기의 특정위험물질을 수입 금지하기로 한 대만에 대해) 미국 측이 대만에 강력 대응하면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법안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이를 놓고 김 의원은 “이건 매국이에요. 한국은 미국 쇠고기 수입하고 싶으니 대만에 압력을 넣어 달라? 이런 매국노가 지역통상국장이에요? 이건 세계의 웃음거리”라고 인신공격성 비난을 쏟아냈다.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과 유기준 의원은 “그런 발언은 상임위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속기록에서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김 의원이 반발하면서 고성이 오가 15분간 국감이 중단된 것. 김 장관은 “안 국장은 (공개된 전문의 내용이) 자신의 (실제) 발언과 뉘앙스가 다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대원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은 이날 오후 한국을 찾은 페루, 에콰도르 등 중남미 5개국 고위 인사들과의 만찬에 참석하려 자리를 떴다가 의원들에게 호된 질책을 들었다. 여야 의원들은 “양당 간사와 위원장 허락 없이 무단이탈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박 이사장은 만찬을 시작하자마자 다시 돌아와 “죄송하다”고 말했다. 남경필 위원장은 “KOICA 측이 제출한 (국감장 이탈에 대한) 서면 허가요청서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서명했으니 나도 책임이 있다”면서도 “박 이사장이 구두로 요청했으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감이 끝나갈 무렵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은 외교부 고위 당국자에게 질의하며 느닷없이 “4강 대사(에 내정된 것) 축하드린다. 고생하셨으니 좋은 곳 가서 근무하시라”라고 말해 참석자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외교부가 언론에 엠바고(보도유예)를 요청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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