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관 ‘상하이 스캔들’]정권 실세-의원 전화번호 통째 유출… 도청당했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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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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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 씨 대형 개인금고 속에서 MB-한국 의원 연락처 등 줄줄이


스캔들 의혹 제기 투서까지 덩 씨 손에 중국 상하이 교민이 덩신밍 씨와 H 전 영사 사이의 스캔들 의혹을 제기한 투서 사진. 사진의 유출경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덩 씨가 입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스캔들 의혹 제기 투서까지 덩 씨 손에 중국 상하이 교민이 덩신밍 씨와 H 전 영사 사이의 스캔들 의혹을 제기한 투서 사진. 사진의 유출경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덩 씨가 입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33) 씨가 중국 상하이(上海) 주재 한국총영사관을 중심으로 수집한 정보는 국내 현 정권 실세 200여 명의 휴대전화번호, 상하이 비자 발급 현황 등 영사관 내부 자료와 이명박 대통령 등 상하이를 방문한 국내 주요 인사의 방문 일정 및 구체적인 동선 같은 정보가 담긴 문건 등 세 가지다.

특히 휴대전화는 번호만 알아도 도청이 가능하다는 것이 통신·보안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결국 덩 씨에게 흘러간 정보는 단순한 ‘연락처’ 정도가 아니라 ‘국가기밀’을 알 수 있는 도구가 됐다는 지적이다.

○ 덩 씨의 개인 금고 속엔 무슨 자료가


‘MB 선대위 비상연락망’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료에는 이 대통령을 포함해 현 정부 실세와 여당 의원들의 휴대전화번호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 같은 자료는 덩 씨를 의심한 남편이 덩 씨가 사용하던 개인 금고와 휴대전화 컴퓨터 디지털카메라 등에서 확보한 것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진 선대위 비상연락망의 번호를 취재진이 직접 확인해본 결과 명단에 포함된 이들 중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별보좌관,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 이방호 지방분권촉진위원장,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 박진 이군현 차명진 의원 등 상당수가 현재까지 여전히 같은 번호를 사용 중이었다. 이 위원장은 “20년 정도 써 온 개인 휴대전화번호이지만 중국 쪽으로 넘어간 정황이 있다니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차관 측도 “보안에 문제가 있을 경우 즉시 바꾸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번호가 공개됐다는 점에 불쾌함을 드러낸 의원도 적지 않았다. 차 의원 측은 “이런 식으로 번호가 원치 않게 공개된 것이 심히 불쾌하다”며 “늦었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번호를 아예 바꾸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김 특보와 박 의원 등도 “당황스럽고 번호 변경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덩 씨의 남편 진모 씨는 이 같은 자료를 국무총리실 등에 제공한 직후 주변 지인들에게 “아내가 평소 대형 개인금고 두 개에 주요 문건 및 귀금속 등을 보관해왔다”며 금고 한 개는 수십번 시도한 끝에 우연히 비밀번호를 맞춰 열 수 있었지만 나머지 한 개는 비밀번호를 끝내 맞추지 못해 열어보지 못했으며 이 금고에 어떤 내용이 있을지 상상도 못할 정도”라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정보 말고도 덩 씨를 통해 유출된 국가기밀이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 대통령 일정·동선도 고스란히


덩 씨는 이 외에도 각종 민원을 해결해주며 고급 정보를 수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5월 상하이 엑스포 개막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의 일정 및 동선 관련 정보다. 대통령 일정은 테러 등의 위험 때문에 국내에서도 사전에 알려질 경우 담당자가 문책을 당하는 1급 비밀이다.

당시 상하이총영사관 상무관으로 재직 중이던 K 전 영사는 별도 검문, 검색 절차 없이 이 대통령을 행사장에 출입시키는 문제와 행사장 내부에서 전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부분이 중국 측과 협의되지 않자 덩 씨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덩 씨는 대통령 일정 및 의전과 관련된 공문을 요구했고 결국 K 전 상무관은 이를 덩 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K 전 상무관은 “대통령 의전 관련 문건 및 정보를 덩 씨에게 내가 직접 넘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덩 씨에게 급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대통령뿐만 아니라 상하이를 찾았던 신정승 전 주중대사 등 주요 국내 인사들의 정보도 덩 씨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덩 씨는 상하이 총영사관 내부 자료도 수집했다. 덩 씨는 상하이 총영사관 월별 비자 발급 현황 및 비자 심사 대리 기관, 비자 대행신청 여행사 현황 등이 상세히 적힌 대사관 내부 자료도 가지고 있다.

○ 만만치 않은 유출 파장


중국을 비롯해 주요 국가 정보기관들의 도청 수준은 전화번호만 알아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중국 정보기관에 국내 정부 요인의 휴대전화번호 및 영사관 내부연락망 등이 넘어갔다면 통화 내용 역시 고스란히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양훈기 광운대 전파공학과 교수는 “휴대전화번호만 알고 있으면 얼마든지 해외에서도 도청이 가능하다”며 “기지국 역할을 하는 장치를 만들어 도청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휴대전화기 영향권 안에만 위치시키면 통신 내용을 그대로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태명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역시 “휴대전화번호만 있으면 휴대전화 속 USIM 카드의 ID 및 일련번호를 파악해 그대로 복제할 수 있다”며 “복제한 USIM 카드를 별도 휴대전화기에 삽입하면 통신 데이터를 그대로 듣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의 한 도청 전문가는 “휴대전화 번호만으로 상대방의 통신 내용을 도청하는 기술을 나도 직접 본 적이 있다”며 “특히 중국과 미국에서 휴대전화 감청 전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전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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