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부글부글… 민주 표정관리… 靑 끙끙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일부만 남은 농성장 5일 오전 1시경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민주노동당 의원과 당직자 30여 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시간 상당수 민주당 보좌진은 당 지도부의 농성 해제 결정이 내려지자 개별적으로 국회의사당을 빠져나갔다. 전영한 기자
일부만 남은 농성장 5일 오전 1시경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민주노동당 의원과 당직자 30여 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시간 상당수 민주당 보좌진은 당 지도부의 농성 해제 결정이 내려지자 개별적으로 국회의사당을 빠져나갔다. 전영한 기자
격앙속 전열 정비하는 한나라

“폭력-생떼쓰는 민주당에 고스란히 두 손 든 것”

모든 법안 연기하더라도 野와 대치할지 고심

김형오 국회의장이 4일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쟁점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한나라당에선 “김 의장이 완벽하게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꼴”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이날 밤 민주당이 본회의장 입구 로텐더홀 농성을 풀기로 결정하자 “민주당만 좋은 일 시켜준 것이라는 게 바로 입증됐다”며 김 의장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김 의장의 생각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물론 국민의 뜻에도 반하는 것이다. 하수(下手) 중 하수 전략”이라며 “직권상정이라는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세력들에 부화뇌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핵심당직자는 “지금 시국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저러는 것인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다”며 “야당의 폭력과 생떼 쓰기와 좌파 언론의 협공 앞에 고스란히 두 손을 든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 중진 의원은 “김 의장이 직권상정의 후폭풍을 감내하기 싫다는 보신주의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2월 국회에서 쟁점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다고 어떻게 장담하느냐.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쟁점법안 처리와 관련해 “의원총회에서 결정했듯이 1월 8일까지라는 시한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신중론도 제기됐다.

권영진 의원은 “불법과 폭력은 끝내고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돌아와 대화와 타협으로 가야 한다”며 “아쉽지만 직권상정은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다 안 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5일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를 열어 김 의장의 발표에 대한 당의 공식 대응책을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김 의장이 직권상정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공식 천명함에 따라 쟁점법안 처리를 두고 당내 분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통과시킬 수 있다고 한 법안만이라도 일단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 2월 임시국회에서 다음 기회를 모색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법안 처리를 2월로 넘기더라도 야당의 물리적인 저지 방침에 밀리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온건파는 민생 법안을 먼저 처리하고 미디어 관계법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금산분리 관련 법안 등 쟁점법안 처리를 2월로 미루자는 쪽이다.

하지만 친이명박계에선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이번 임시국회에서 쟁점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명예 퇴군’ 명분 찾은 민주

“假합의안보다 더 유리… 장외투쟁카드 아꼈다”

의총 끝나자 보좌진 상당수 농성장 빠져나가

민주당은 4일 김형오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 자제, 여야 협상 촉구’ 성명이 나오자 매우 고무된 분위기였다. 민주당은 이날 밤 본회의장 앞 농성해제 결정으로 화답했다.

민주당은 김 의장이 성명에서 “여야 협상대표가 가(假)합의안을 마련한 적이 있다. 여야가 합의를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조속한 협상을 촉구한 것은 사실상 한나라당을 겨냥한 것이자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한 당직자는 “국회 경위와 방호원만으로는 농성 해산이 어려운 데다 경찰력 동원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초래할 수도 없어 고민하던 김 의장이 정 대표가 내민 손을 잡은 것 아니겠느냐”고 표현했다.

이에 앞서 정 대표는 이날 오전 본회의장 점거 해제의 전제조건으로 직권상정 포기 선언을 김 의장에게 촉구하며 미디어 관계법 등 쟁점법안에 대해서는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여야 원내대표 간 가합의안의 ‘2월 상정, 합의처리 노력’보다 더 강경한 태도로서 민주당은 김 의장의 직권상정을 저지한 만큼 추후 ‘백지상태’에서 다시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극한 대치 상황에서 먼저 타협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김 의장의 성명이 나온 직후 민주당 내에서 장외투쟁이라는 또 다른 수단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안도의 반응이 나온 것도 이런 기류를 읽은 탓이다. 당 고위 관계자는 “만약 경찰력이 투입됐다면 우리는 장외투쟁밖에는 길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회의사당 점거로 여론의 지탄을 받아 온 상황에서 민주당으로서는 김 의장의 직권상정 유보 언급을 계기로 이젠 명예롭게 퇴군할 명분을 찾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열흘 동안 계속해 온 농성의 수위 완화 문제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본회의장 앞에서 당직자 및 보좌진이 해온 로텐더홀 농성은 일단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본회의장과 상임위원회 회의실 점거 농성은 의원 과반수가 임시국회 임기 마지막 날인 8일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로텐더홀 점거 농성 해제 시기를 4일과 5일 중 선택하는 문제를 놓고 의원들의 의견이 5 대 5가량으로 나뉜 것으로 전해졌으나, 5일 오전 8시 해산식을 갖고 ‘모양 좋게’ 해제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민주노동당 측이 로텐더홀에서 ‘결사항전’을 외치며 농성 해제를 반대하고 나섬에 따라 상당수 보좌진은 “우리가 민노당 들러리를 서줄 이유가 있느냐”며 5일 새벽 각자 농성장을 빠져나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불만 삭이는 청와대

“도대체 어떡하라고

金의장, 자신만 생각”

4일 김형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자제 언급 및 민주당의 국회 로텐더홀 점거 해제 결정에 대해 청와대는 착잡한 반응이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가 국회 상황에 대해 일일이 왈가왈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임시국회 회기 내 주요 쟁점법안 처리가 사실상 무산되자 청와대는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국회만 도와주면 경제 살리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쟁점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직접 당부했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 주장만 관철된 셈이 됐다.

이 때문에 공식 반응과는 별개로 청와대 내에서는 김 의장에 대해 “정치적 욕심이 있어서 자신에게 부담이 되는 일을 꺼리는 것 아니냐” “자기 이미지만 생각한다” 등 ‘험한’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가 2008년 안에 반드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을 김 의장에게 전달한 게 거의 두 달 전”이라며 “당시에는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가 상황이 벌어진 뒤 ‘협상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놓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얘기냐”고 비판했다.

또 차제에 국회 본회의장 점거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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