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11월 17일 02시 5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국의 공조 방안, 금융개혁과 재정정책을 통한 내수 진작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선언문은 향후 금융위기 대처를 위한 원론적인 차원의 약속일 뿐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담아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회의 전부터 관심을 끌어온 5가지 문제가 어떻게 정리됐는지 알아본다.》
[1] 브레턴우즈 체제 대체할 ‘새로운 체제’ 태동?
새판짜기 논의 없이 현재의 문제점 지적에 그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중심이 된 브레턴우즈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의 태동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회의 전부터 유럽이 바람을 잡았고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저평가됐던 신흥국의 상당수가 이를 옹호했다.
하지만 정작 막이 오르자 유럽 각국 정상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작았다. AFP통신 등 주요 통신은 “유럽 지도자들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요구를 자제한 채 현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쳤다”고 평가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IMF와 세계은행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존의 세계 경제 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련된 낡은 시스템”이라는 원칙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실제로 회의 결과는 금융체제의 ‘새판 짜기’ 논의보다는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공동보조를 논의하는 데 그쳤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참 이상할 정도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적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퇴임을 60여 일 앞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공격할 의욕을 상실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2] 美-EU 대립… 반반씩 물러선 모양새로 결정
‘적절한 규제-감시’ 명시… 자유무역 신뢰 재확인
미국이 원인을 제공한 국제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G20 정상회의의 이면에는 2차 대전 이래 유지해 온 미국의 ‘금융 패권’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거센 도전이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EU의 순번제 의장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회의 참석에 앞서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해 왔던 달러화가 더는 그런 지위를 유지해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간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시장에 대한 개별 국가의 개입은 물론이고 EU 차원의 범유럽적 규제를 옹호하는 유럽을 겨냥해 “국가의 개입을 만병통치약으로 간주하는 데 반대한다”며 “몇 달의 위기를 이유로 60년간의 성공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회의 결과는 양 진영이 반반씩 양보한 모양새로 결정됐다. 공동선언문은 ‘적절한 규제와 감시’라는 원칙을 명시했지만 자유무역과 시장의 조정능력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했다. 규제와 감시의 구체적인 내용은 내년 4월 30일 열리는 제2차 G20 정상회의에서나 다뤄진다.
[3] 세계경제 리더십 G7에서 G20으로 변화?
“새 국제기구 탄생의 씨앗”… 정례화 가능성 열려
1976년 결성된 선진국의 모임인 G7이 독점적으로 보유해 온 경제 리더십을 G20이 분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였다. G7의 힘만으로는 금융위기의 수습과 향후 위기의 재발 방지에 한계가 있는 만큼 세계 경제의 85%를 차지하는 G20이 협력해야 진정한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번 회의 개최의 이유이기도 했다.
일단 내년 4월 제2차 회의를 열기로 함에 따라 G20 정상회의가 정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렸다.
물론 비관론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15일 “이번 회의가 새 국제기구의 탄생을 위한 씨앗을 뿌렸다”며 “새 기구는 G7이나 러시아를 포함한 G8보다는 규모가 커야겠지만 회원국 20개 정도면 너무 범위가 넓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20개국의 회의에서 실질적인 합의를 얻어내기는 어렵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이번 회의의 성과를 평가 절하했다.
[4] 신흥국 역할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한국-중국-브라질-인도 등 향후 큰 목소리 예고
이번 회의에서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을 미국과 유럽이라는 기득권 세력의 방만한 금융체제 운영 탓으로 보는 신흥국들의 역할에도 이목이 쏠렸다.
이번 회의는 금융위기 극복뿐 아니라 새 국제경제 질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대 외화 보유국으로 우뚝 선 중국과 세계 무역에서 비중을 높여 온 한국 브라질 인도 등 신흥국이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전통적으로 제3세계의 맹주 역할을 자임해 온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국제사회는 금융위기로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개발도상국을 배려해야 한다”며 “국제금융조직의 개혁 과정에서 개도국의 대표권과 발언권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등도 “G8은 현재의 위기에서 무기력하다”며 신흥국이 적극 참여하는 국제금융 질서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5] 각국 “보호주의 확산 경계” 합의는 했지만…
자국산업 보호 ‘발등의 불’… 무역장벽 높아질수도
정상들은 회의에서 시장경제주의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면서 보호주의 확산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합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위기 상황에서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릴 염려가 있다”고 우려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새 장벽을 더 만들지 않는 ‘동결(standstill) 선언’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미 각국은 도산 직전으로 몰리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 장벽을 높이거나, 대량 해고를 방지하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보호주의를 경계하자는 합의는 선언적 규정에 그칠 공산이 높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