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MB와 오바마의 ‘정권 궁합’

  • 입력 2008년 10월 22일 20시 11분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를 보면 11년 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모습이 겹쳐진다. 매케인은 경제를 망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차별화한다며 연일 “나는 부시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외친다. 이 후보도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이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마련한 대선 후보 간담회에서 “나라 살림을 어떻게 했기에 이 지경이 된 겁니까”라고 몰아세웠다. 임창렬 경제부총리에게 한 말이었지만, 실은 YS를 면전에서 비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후보가 혀를 찰 정도였다. 미국 대선이 열흘 남짓 남은 지금, 매케인의 패색이 점점 짙어가는 걸 보면 정치에서 ‘유산(遺産)’이라는 것이 얼마나 피할 수 없는 멍에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며칠 전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최고위과정에서 한승주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의 강의를 들었다. 외무부 장관(1993∼1994년), 주미대사(2003∼2005년)를 지내며 빌 클린턴, 부시 행정부를 직접 경험한 분이라 경륜이 엿보였고, 무엇보다 향후 4년간의 한미관계를 상상해보는 기회가 됐다.

상상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TV 토론에서 ‘묻지도 않았는데’ 리처드 루거(전 상원 외교위원장) 상원의원 이름을 거명한 걸 보면 혹시 국무장관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는 이른바 ‘넌-루거 법안’의 입안자인데 그렇다면 오바마도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우크라이나 방식의 인센티브 해법을 구상하고 있다는 뜻인가.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다. 민주, 공화 양당 인사들이 초당적으로 참여해 만든 제2차 아미티지 보고서에도 ‘통일 후 우크라이나 방식의 해결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 한반도 정책의 핵심 실세가 될 것으로 꼽히는 프랭크 자누지가 바로 그 아미티지 보고서의 집필자 중 한 사람 아닌가. 조 바이든 부통령 후보의 오랜 외교보좌역인 자누지가 부통령실로 가면 딕 체니 부통령과 스쿠터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이 그랬던 것처럼 부통령실이 한반도 정책을 주무르게 되는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상상도 마지막엔 딱 한 곳에 머물렀다. 이명박(MB) 대통령과 오바마의 ‘정권 궁합’은 과연 어떨까.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 특히 대북(對北) 공조체제는 정권의 궁합이 맞지 않아 삐걱댄 측면이 많았다. 김영삼-클린턴, 김대중-부시 1기, 노무현-부시 2기로 이어지면서 양국 지도자와 정권 간에 뭐랄까 케미스트리(chemistry·화학적 결합요소)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 대통령의 경우 부시 대통령과의 스킨십을 워낙 ‘요란하게’ 과시한 탓인지 미국 새 정부와의 궁합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미 그런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테러지원국 딱지까지 떼 내준 마당에 오바마 행정부까지 들어서면 북은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일관할 것이다. 통미봉남은 가능한 한 상호주의 원칙만큼은 지키려는 이명박 정부의 소외를 부르기 쉽다. 한미 간에 궁합이 안 맞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 번 더 돌려 생각하면 MB의 자수성가 스토리가 오바마와 궁합을 맞출 수 있는 공통의 코드가 될지도 모른다. 거기에 기업가다운 실용주의와 현실 적응력을 보태면 세간의 걱정을 괜한 노파심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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