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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3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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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례 ‘공천헌금 조사 모친’ 신고안해도 돼
재산 위탁 가능성… 적발돼도 실명 비공개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8일 초선 혹은 18대 국회에 다시 진출한 의원 161명의 재산 현황을 공개했지만 ‘직계 존비속 고지 거부’ 조항으로 인해 실제 재산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공직자윤리법은 직계 존비속 재산을 공개하도록 돼 있으나 피부양자가 아니면 고지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재산이 공개된 의원 중 직계 존비속 고지를 거부한 사례는 전체의 28%인 45명에 달한다.
A 의원은 모친이 갖고 있는 1000만 원 상당의 콘도 회원권을 신고했다. 하지만 그는 모친이 다른 재산은 일절 없다고 밝혔다. A 의원은 “모친이 갖고 있는 재산이 콘도 회원권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콘도를 갖고 있는데 예금이나 부동산이 전혀 없는 게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은 친정어머니의 공천 헌금 논란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지만 이번 재산 공개 때 친정어머니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직계 존비속에 친정 부모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B 의원은 30억 원가량의 재산을 신고했지만 모친 재산은 ‘형님이 부양한다’며 고지를 거부했다. 재산이 70억 원에 육박하는 C 의원은 부모와 장·차남이 모두 ‘독립생계’를 꾸리고 있다며 고지하지 않았다.
학원 재벌의 자제로 알려진 D 의원도 부모 재산은 밝히지 않았다. 본인 신고재산은 10억 원이 조금 넘었다.
‘고지 거부’ 의사를 미리 밝히지 않고 아예 ‘모르쇠’로 일관한 경우는 재산공개 자료에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처음부터 직계 존비속의 재산 항목을 공란으로 남기면 고지 거부를 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정상적인 신고를 한 것으로 오인되기 마련이다.
공개 대상 친족의 범위도 현실과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 부모나 자식 등 직계 존비속만 공개 대상에 포함시키다 보니 형제자매나 친정 부모, 장인 장모에게 재산을 위탁해 놓아도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
더욱이 최근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는 골동품이나 그림 등은 신고하지 않아도 적발할 방법조차 없다.
재산 신고 내용에 대한 사후 심사 조치도 부실하다. 국회는 의원들이 제출한 자료를 행정안전부나 국세청 자료와 대조해 심사하지만 부실 신고 여부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국세청이나 금융감독원 직원들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누락 재산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부실신고 사실을 적발했다고 해도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채 1000만 원 이하의 벌금만 물리기 때문에 의원들로서는 굳이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가감 없이 밝혀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일부만 신고하거나, 아예 누락했다가 적발돼도 유권자들이 관련 사실을 알기 어렵게 돼 있기 때문. 국회 측은 “지난해에도 의원 2명에게 벌금을 매겼지만 실명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독립 생계를 유지하는 직계 존비속의 경우 사유 재산의 비밀 유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법 취지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결과적으론 직계 존비속의 재산까지 모두 공개하는 성실한 사람만 손해를 볼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선 법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이 기사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조병주(서울시립대 경영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