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부-규제완화는 하늘의 소리…누구도 못 막아”

  • 입력 2008년 2월 25일 02시 50분


와타나베 요시미 일본 행정개혁·금융 담당상은 “일본이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관 주도의 시스템을 시장 주도의 시스템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와타나베 요시미 일본 행정개혁·금융 담당상은 “일본이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관 주도의 시스템을 시장 주도의 시스템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정부조직, 이미 7년 전에 줄여일본은 2001년 23개 성청을 1부 12성청으로 축소하는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사진은 그해 1월 5일 건설성과 운수성, 국토청, 홋카이도개발청 등 4개 성청을 통합한 국토교통성의 현판식 장면.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여성은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초대 국토교통상과 참의원 의장을 지낸 오기 지카게 씨.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정부조직, 이미 7년 전에 줄여
일본은 2001년 23개 성청을 1부 12성청으로 축소하는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사진은 그해 1월 5일 건설성과 운수성, 국토청, 홋카이도개발청 등 4개 성청을 통합한 국토교통성의 현판식 장면.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여성은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초대 국토교통상과 참의원 의장을 지낸 오기 지카게 씨.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 ‘日 공무원제도 수술’ 와타나베 요시미 행정개혁·금융상 인터뷰

《“정부 조직을 슬림화하고 시장에 대한 관(官)의 간섭을 줄이자는 개혁은 ‘하늘의 소리이자 국민의 소리’입니다.” 공무원제도 개혁을 놓고 일본이 시끄럽다.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 행정개혁·금융 담당상이 공무원의 정치인 접촉 제한 및 행정고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공무원제도 개혁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관료 조직은 물론 여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거세다. 21일 오후 금융청 장관실에서 와타나베 행정개혁상을 단독으로 만나 일본의 행정·공무원제도 개혁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는 “저항과 반발이 거세다고 해도 중도에 꺾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개혁의 순항을 자신했다.》

―일본은 2001년 23개에 이르는 중앙 성청(省廳)을 1부(府) 12성청으로 대폭 줄이는 정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때 정부가 이미 상당 수준 슬림화한 것 아닌가.

“중앙 성청 개편은 자동차 차체의 모델을 바꾼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반면 현재 추진 중인 공무원제도 개혁 등은 엔진을 교체하는 작업이다.”

―일본 정부가 쉬지 않고 정부 및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일본의 제조업은 강했다. 규격에 맞는 물건을 대량 생산하면 됐기 때문에 통제형 조직이 발달했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관(官)이 민(民)을 통제하면서 성공적인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그 뒤 세계경제의 일체화가 진행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통제보다 개성 있는 경쟁이 국가를 발전시키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일본은 ‘조직인’보다 창의성 있는 인재를 더 필요로 한다. 칸막이 행정이나 연공서열주의 등 기존 관료제도의 조직 운영 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유물이 됐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의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관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는 점이다. 인재, 자산, 돈이 공공부문에 고여 있어 일본 경제가 0% 부근 성장에서 헤매는 것이다.”

―공무원제도 개혁 등에 대해서는 반발이 많다고 들었다.

“협박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일반 국민으로부터는 응원의 메시지가 많다. 국민의 응원이 나를 떠받쳐 주는 힘이다. ‘고립무원’이라는 보도가 많은데도 내가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공무원제도 개혁이 ‘국민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관료 집단이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관료들은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현상’을 바꾸지 않으면 일본은 침몰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본의 공무원제도는 도입될 당시만 해도 근대적이고 선진적인 제도였지만 전시(戰時) 체제를 거치면서 변질됐다.

1940년대 일본은 나치 독일을 모델로 한 국가사회주의적 제도를 연이어 도입했다. 중앙집권, 관료 지도, 정치 배제, 통제 시스템, 결과적 평등 지향이라는 관료제도의 특징이 이 시기에 확립됐다. 오늘날 이를 탈피하는 것은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를 맞아 결코 피해 나갈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데도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관료들의 습성이 강하기 때문에 마찰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개혁을 통한 ‘작은 정부’를 추구하지만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어 오히려 ‘큰 정부’가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온다.

“해답은 그 반대다. 출산율 저하로 젊은 세대가 줄어드는 가운데 ‘큰 정부’ 노선을 지향하면 젊은 세대의 부담이 과중해져 체제를 지속할 수 없어진다. 일본과 같은 소자(少子)고령화(저출산 고령화) 사회에는 정부를 최대한 슬림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정부와 민간을 가릴 것 없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국가전략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물론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정부가 수수방관하면 양극화가 심화된다. 따라서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추구하는 중에도 (부와 소득의) 격차 확대에 브레이크를 거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격차를 시정하는 데만 매달리면 자유가 사라지고 국민이 질식하게 된다.”

―올해 초 한국에서는 일본의 대장성 개혁이 큰 화제가 됐다. 대장성 개혁은 일본의 경제회복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1990년대 일본은 거품이 붕괴하면서 불량 채권의 누적과 디플레이션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약 130조 엔에 이르는 경기부양 예산을 집행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역시 은행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결국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됐다.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행정 책임을 지우는 차원에서 대장성을 재무성과 금융청으로 분할했다. 시장의 압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장성의 행정 방식을 대전환한 것은 사실이지만 새 방식의 이륙은 이제부터다.”

―올해 초 ‘금융시장 경쟁력 강화 플랜’을 발표했는데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일본 시장을 세계에 개방해 세계에서 돈이 몰려드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개방을 통해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성장 에너지를 일본으로 흡수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도 금융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양국이 협력할 여지가 있을까.

“위험을 감수하는 정신(Risk-taking)에 관한 한 일본은 한국에서 배울 점이 많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굴욕을 맛보면서도 과감하게 리스크를 받아들여 순식간에 부활했다. 반면 일본은 개인들이 1550조 엔에 이르는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은 파트너십을 통해 발군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관계라고 본다.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둘러야 한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와타나베 행정개혁·금융상은…

△1952년 도치기(회木) 현 출생

△와세다(早稻田)대 정경학부 및 주오(中央)대 법학부 졸업

△1996년 중의원 첫 당선(현재 4선)

△2006년 12월 규제개혁 담당상(아베 신조 내각)

△2007년 8월 행정개혁·금융 담당상

△2007년 9월 행정개혁·금융 담당상 유임 (후쿠다 야스오 내각)

△저서: ‘금융상품거래법’ ‘시나리오 일본 경제와 재정 재생’ ‘반(反)자산디플레의 정치경제학’ 등

■ ‘와타나베 개혁안’은

“관료 이기주의-특권 철폐” 외로운 싸움

21일 오후 와타나베 요시미 일본 행정개혁·금융 담당상의 사무실이 있는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가스미가세키(霞が關) 금융청.

와타나베 행정개혁상의 비서진과 금융청 직원, 보도진 등으로 북적거리는 응접실에서는 이날 마이니치신문 조간에 보도된 한 장의 사진이 단연 화제였다.

공무원제도 개혁을 논의하는 첫 각료 회동이 끝난 뒤 와타나베 행정개혁상이 마스크를 쓰고 보도진 앞을 지나가는 사진이었다.

각료 중 개혁 반대파인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관방장관 등이 ‘와타나베 포위망’을 형성한 데 대한 ‘무언의 항의’라는 것이 신문의 분석이었다.

와타나베 행정개혁상이 주도하는 공무원제도 개혁안 원안은 △공무원의 정치인 접촉 제한 △행정고시 출신 고급공무원제도 폐지 △간부 공무원 인사를 일원적으로 관리할 내각 인사청 신설 등이 골자다.

기본 취지는 관료집단의 조직이기주의와 특권을 바로잡겠다는 것. 이는 2006년부터 추진 중인 공무원 정원 감축 개혁 및 와타나베 행정개혁상 주도로 지난해 12월 각의를 통과한 ‘독립행정법인 정리합리화’ 계획과도 관련이 깊다.

독립행정법인 정리합리화 계획은 2001년 중앙성청 개편과 함께 출범한 독립행정법인(중앙성청의 현장업무를 떼어내 법인화한 조직)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내용.

당시 계획을 밀어붙이기 위해 홀로 각 중앙성청의 반발을 극복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 와타나베 행정개혁상의 처지는 그나마 ‘사면초가(四面楚歌)’는 면한 상태다.

당시에는 ‘아군’이라고는 없었지만 지금 공무원제도 개혁안에 대해서는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전 자민당 간사장 등 중진과 자민당 내 소장의원들이 와타나베 행정개혁상을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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