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선 100일 전엔 무슨 일이

  • 입력 2007년 9월 8일 10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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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과 2002년 치러진 대선 D―100일에는 여야 후보가 정해진 가운데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다자(多者) 구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1997년 15대 대선은 여당인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15대 대선의 D―100일 즈음에는 유력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후보가 장남의 병역 면제 의혹에 대한 야당의 ‘병풍(兵風) 공세’에 시달리며 후보 교체론까지 불거지고 있었다.

반면 같은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2위를 했던 이인제 경기지사의 지지율은 크게 오르고 있었다. 그해 9월 초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김대중 후보, 이 지사에 이어 3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이 지사는 그달 8일 대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을 사퇴했고 같은 날 신한국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은 “9월 말에 이 후보에게 총재직을 넘기겠다”고 발표해 ‘김심(金心)’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자 이 지사는 추석 연휴 시작 직전인 9월 13일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제1 야당인 국민회의 김 후보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DJP 연합을 준비하며 외연 확대에 박차를 가했고, 제2 야당인 민주당도 조순 서울시장을 후보로 영입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2002년 대선 D―100일에는 여당인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대선에 재도전하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이 대선주자로 각축을 벌였다.

16대 대선 103일 전인 2002년 9월 7일 본보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가 30.2%의 지지율로 ‘월드컵 후광’을 등에 업은 무소속 정몽준 후보(29.5%)를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었다. 12월 대선에서 당선된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시 지지율은 17.8%에 그쳤다.

이 후보는 1997년에 이어 또다시 병풍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검찰도 이 후보 장남의 병역 면제 의혹과 관련한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다. 노 후보는 영남표를 겨냥해 자신의 지지 세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당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정 후보는 그해 9월 17일 출마 선언을 하고 신당 창당 작업에 나섰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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