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평화주의의 환상

  • 입력 2007년 3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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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미국이 북한을 상당히 우호적으로 대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우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부터 북한에 대해 상당히 ‘말’ 조심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이 된 후 부시는 세계의 다른 어떤 독재자보다 더 강한 톤으로 북한 김정일 정권을 공격해 왔으나 작년 후반부터는 북한에 대해 의식적으로 입을 봉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미국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부의 관리까지도 모두 다 북한에 친절하게 대하기로 결의라도 한 듯이 보인다. 특히 북-미 관계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한 실무급 협의를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김계관 6자회담 북한대표를 ‘국가원수’나 되는 것처럼 정중하게 환영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국민은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이 최근에 북한을 관대하게 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최근 우연히 택시운전사에게서 대단히 흥미 있는 강의를 받았다.

머리 좋은 이 택시운전사에 의하면 미국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는 북한이 완전히 중국의 패권하에 예속돼 버리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북한의 주권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대북한 자세가 현저하게 부드러워진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북-미 관계 정상화 급물살

사실 그럴까?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경험적 증거를 제시하면서 논리적으로 결론에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필자가 만난 택시운전사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지정학적 경쟁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석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물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국적으로는 그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책은 불확실한 상태에서 결정된다.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항상 정책 결정을 지연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북한을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는 존재로 만들려고 했을 때 미국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강대국 간의 관계는 음악에서처럼 화음과 불협화음으로 구성되는데 아직까지도 인류는 화음으로 구성된 작곡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제관계는 무정부 상태이다. 평화체제라는 표현을 경계해야 한다. 평화를 지향하는 조약은 있지만 평화를 실제로 보장하는 조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미국이 최근 북한 사람에게 비교적 예의바르고 친절한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에 관대하게 나간다고 미국 스스로 나발 불고 돌아다니지는 못한다. 미국의 새로운 태도를 비판할 수도 없다. 미국의 의도가 북한을 중국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는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한다.

지금 한반도에는 거대한 지진이 다가오고 있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직접적인 교섭이 미국과 북한 간에 시작됐다.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 생산을 전면 포기하고 비확산체제에 들어오라고 요구한다. 북한은 미국에 적대관계를 버리고 관계 정상화를 하자고 요구한다.

북-미 양측의 요구조건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반드시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북-미 간 합의의 성공이 보장돼 있지는 않지만, 현시점에서 보면 성공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북-미 관계 정상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그야말로 지각변동이라 할 수 있다.

우선 한미관계가 변질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는 우리가 하기에도 달려 있지만 잘못 다루면 우리의 존재와 비중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비극이 있을 수 있다.

동북아 지각변동 대비해야

우리가 지혜롭게 대처한다고 해도 북-미 관계가 ‘정상화’된 세상은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익숙해진 미국 주도하의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세상이 될 수 있다. 그와 같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전략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경원 전 주미대사·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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