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회 생일 맞은 김정일, 후계자 지명 왜 미룰까

  • 입력 2007년 2월 16일 03시 00분


《16일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5회 생일. 절대 권력자로서 ‘후계’를 생각할 때가 다가왔다.

하지만 북한 후계구도의 향배는 여전히 짙은 안개에 가려 있다.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이런 가운데 세 아들인 정남(36), 정철(26), 정운(23)에 대해서도 ‘권위 있는’ 대북전문가마다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62세 때 후계자로 지명한 김 위원장(당시 32세).

그는 왜 지금까지 후계 문제를 가시화하지 않고 있을까.》

○ 되풀이된 아버지의 운명

평양시 대성구역의 금수산기념궁전(과거 주석궁)에서 정면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는 나지막한 아미산을 둘러싸고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보안성, 보위사령부 등 핵심 권부가 집중돼 있다. 궁전과 마주한 가장 좋은 위치에는 인조석으로 장식한 2층짜리 단독주택이 있다. 김 위원장의 배다른 동생 평일의 저택이다.

김 주석과 후처 김성애 사이에서 태어난 평일은 1970년대 초반 김일성의 후계자로 거론됐으나 결국 그 자리는 김 위원장에게 돌아갔다. 평일과 함께 어머니 김성애, 김 주석의 동생인 김영주 당시 부주석은 모두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후 평일은 외교관 자격으로 주로 해외에 거주해 왔다. 평일의 가족들은 집 앞 병영에서 울려 퍼지는 김정일 찬양가를 매일 10여 차례 넘게 들어야 했다. 방문객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정남과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정철, 정운은 배다른 형제다. 김 위원장이 이들 중 한 명을 후계자로 지명하면 탈락자들은 평일의 운명이 될 소지가 크다. 김 위원장도 아버지 김 주석이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한 아들 평일을 보며 느꼈을 가슴 아픈 심정을 대물림할 운명인 것이다.

○ 김정남이 최후의 보루?

김 위원장은 후계자 선정에 앞서 자식들에게 이러한 비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쓸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이 일본 밀입국으로 물의를 일으켜도 불러들이지 않고 계속 해외에서 호화롭게 살도록 놔두는 것도 이러한 아버지의 배려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아직 후계를 정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 실험 직후엔 그가 최소 15년 이상 권력을 더 행사하겠다며 후계 논의를 차단토록 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현재 동거녀 김옥(43)이 권력 중심부에서 밀려나는 것을 우려해 후계 지명을 최대한 늦추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설도 있다.

아들 중 정철은 호르몬 과다분비증이라는 신체적 약점을 갖고 있고, 김 위원장과 닮은 정운은 유력하나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 외에 이 두 명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해외를 떠도는 정남에 대해서는 그가 아버지의 눈 밖에 났다는 전언과 본인 스스로 후계문제를 외면한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와 관련해 한 북한 정보통은 “맏아들인 정남이 북한 위기상황에서 김정일 일가를 구할 임무를 갖고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폈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독재자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을 지켜본 김 위원장은 ‘만약의 급변사태’에 대비해 해외 비밀탈출구도 준비했고 아들들을 모두 외국에서 공부시켰다는 것이다.

정남이 해외에서 아버지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동남아 등지에 몰래 부동산을 구입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후계자 선정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

김 위원장의 후계자 지명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파탄 상태의 북한 경제다.

북한 주민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3대 세습을 발표하면 민심이 영영 떠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김 위원장이 이 같은 상황에서 물러나면 경제 파탄을 초래한 무능한 지도자라는 역사의 오명을 면할 길도 없다.

자체 회생이 불가능한 북한 경제의 앞날은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달렸다. 13일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가로 중유 5만 t을 받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후계구도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중유 5만 t은 앞으로 핵 게임을 통해 북한이 노리는 막대한 경제지원과 북-미, 북-일 수교의 혜택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또 다른 요인은 후계자 지명으로 발생할 권력 무게중심의 이동이다. 이는 김 위원장 자신이 몸으로 체험해 아주 잘 알고 있다. 북한의 권력 이양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그가 후계자로 지명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아버지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김 위원장에게는 생사고락을 함께 할 믿음직한 측근도 많지 않다. 빨치산 동료들이 많았던 아버지와 크게 다른 점이다. 김 위원장은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1부부장까지 좌천시킬 정도로 측근을 믿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후계자 지명으로 초래될 레임덕을 최대한 막고 장악력을 유지할 확실한 계기는 경제 회생에 성공을 거두는 길뿐이다. 이때까지는 후계자 선정이 계속 미루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