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상돈]대통령 단임제가 어때서요?

  • 입력 2007년 2월 5일 03시 00분


노무현 대통령이 느닷없이 대통령 단임제에 문제가 많다면서 개헌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야말로 탄핵이란 드문 경우가 아닌 한 대통령의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제의 단점을 잘 보여 줬다. 노 대통령이 의원내각제의 총리였다면 불신임을 당해도 여러 번 당했을 것으로 생각되니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의원내각제를 하자고 개헌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제는 이미 우리의 전통이다.

대통령 단임제와 중임제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1987년에 직선제 개헌을 할 때 중임제냐, 단임제냐를 두고 적잖은 논의가 있었다. 장기 집권의 폐단을 체험한 국민은 단임제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단임제를 운영했으니 단임제는 우리 토양에 정착한 셈이다.

대통령제의 고향인 미국은 처음부터 중임을 허용했다. 반면 중남미 국가의 전통은 단임제였다. 그러나 중남미의 대통령제는 군부(軍部)와 결탁한 일당독재인 경우가 많았다. 단임제로 대통령은 바뀌어도 집권세력은 바뀌지 않았다. 비교적 안정된 국정운영을 해 온 멕시코만 해도 1917년 개헌 후 집권당이 20세기 말까지 계속 집권했다. 대통령은 임기 6년의 단임이지만 거의 한 세기 동안 집권당이 통치했다. 2000년에 야당 후보 비센테 폭스가 당선돼 진정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단임제는 국민과 역사의 선택

남미의 경제 우등생인 칠레도 대통령의 계속 중임을 금지해 사실상 단임제와 마찬가지다. 임기는 원래 6년이었는데 2006년 개헌으로 4년으로 단축됐다. 그래서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의 임기는 아쉬울 정도로 짧다. 1973년 쿠데타 후 오랜 군부통치를 경험한 칠레 국민은 중임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남미의 병자(病者) 아르헨티나는 단임제와 중임제를 왔다 갔다 했다. 원래는 임기 6년의 단임제 간선이었는데 1949년에 직선제와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을 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후안 페론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1955년 쿠데타로 실각했다. 그 후 다시 단임제로 돌아갔지만 정권은 군부가 좌지우지했다. 1983년 민주화 후에 취임한 라울 알폰신 대통령은 6년 단임에 그쳤지만, 뒤를 이은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4년 중임제 개헌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해서 총 10년간 재직했다. 그러나 메넴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는 경제위기와 부패로 얼룩졌고 퇴임 후 그는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연임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불러왔다.

1958년에 제정된 프랑스 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를 7년으로 하고 중임 제한을 철폐했다. 5공화국을 출범시킨 드골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초에 국민투표에 패배한 후 사임해서 10년간 재직하는 데 그쳤다. 1981년에 취임한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해서 무려 14년간 대통령직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0년에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이 이뤄져 2002년에 재선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임기는 금년 5월에 끝난다.

필리핀의 경험은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 원래는 대통령의 중임을 허용했지만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장기독재를 끝내고 제정한 민주헌법은 6년 단임제를 택했다. 2001년 초 필리핀 국민은 ‘피플 파워’를 다시 한 번 행사해서 그들이 잘못 뽑은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개헌 또 다른 의도 있나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하느냐 대통령제로 하느냐, 그리고 대통령제로 하면 대통령의 임기를 몇 년으로 하느냐, 중임을 허용하느냐는 문제는 각국의 역사와 경험에 따라 결정된다. 논리적으로 어떤 제도가 더 우수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별안간 단임제를 고치자고 나오는 데는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토 조항을 차제에 손보아야 한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를 개정하겠다는 것은 남북연방제를 하겠다는 말과 같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엄청난 일을 꾸미기 위해 멀쩡한 단임제에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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