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외교관 음주측정 거부…누가 타고 있었기에

  • 입력 2006년 12월 14일 03시 04분


주한 중국대사관의 외교 차량이 경찰의 음주단속과 신분 확인에 응하지 않고 차의 문을 걸어 잠근 채 경찰과 이례적으로 8시간 30분 동안 도로에서 대치했다.

중국대사관은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들어 경찰의 신분 확인 요구를 거부했다. 1961년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외교 공관 불가침, 외교관 개인의 신체 불가침 등 사법관할권의 면제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당시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공개하기 힘든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누가 타고 있었나=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2일 저녁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 앞 도로에서 음주운전 단속에 나섰다. 이날 오후 9시 50분경 ‘외교 ○○○○’ 번호판을 단 은색 쏘나타 차량이 단속 경찰 앞에 섰고 경찰은 음주 측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차량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지 않았다. 짙게 틴팅(일명 선팅)이 된 차량에는 4명이 타고 있었다. 이에 경찰은 순찰차로 차량의 앞뒤를 가로막았다. 대현동 일대는 중국 외교관이 많이 거주하는 곳.

오후 11시경 중국대사관 직원이 달려와 “제네바 협약(빈 협약을 오인한 것)을 보라”며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주장했다. 경찰은 “도난차량일지도 모르는데 그냥 보내 줄 수 없다”며 “신분만 확인되면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대사관 직원은 신분 확인을 거절했다.

13일 오전 2시 반경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 중국담당 직원이 현장에 도착해 중재에 나선 끝에 중국대사관 직원은 운전자의 신분증을 서울경찰청 직원에게 보여 주려 했다. 하지만 이때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몰려들자 대사관 직원은 곧바로 신분증을 감췄다.

서울경찰청 직원은 “신분증을 보지 못했다”며 재차 확인을 요구했으나 대사관 직원은 끝내 이를 거절했다.

오전 4시 반경 현장에 나온 외교통상부 직원은 “내가 차량 탑승자의 신분을 확인했다. 착오가 생기면 외교부가 책임진다”며 경찰을 설득했다.

하지만 외교부 직원 역시 차량 탑승자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경찰은 결국 대치 8시간 30분 만인 오전 6시 20분경 이 차량을 보내 줬다.

외교부는 문제 차량의 운전자가 중국대사관 3등 서기관인 장모(30) 씨라고 밝혔다. 중국대사관은 장 씨 외에 나머지 탑승자의 신분은 확인해 주지 않았다.

▽면책특권 어디까지 인정되나=경찰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면책특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견해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이라면 외교관 차량이라도 당연히 신분 확인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대사관은 “대사관 직원이 나가 운전자의 신분을 알려줬다”며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운전자 장 씨가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외교관은 면책특권에 앞서 주재국 법령을 준수하는 게 의무”라며 중국대사관 직원의 처신이 옳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경찰은 음주측정을 거부한 장 씨에 대해 운전면허 취소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행정처분은 면책특권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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