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협은 계속” 일방적 선언에 美 불만 폭발

  • 입력 2006년 10월 19일 02시 55분


미일 외교장관 ‘화기애애’한중일 3국 순방에 나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8일 첫 방문국인 일본에 도착해 아소 다로 외상과 회담을 하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19일 아소 외상과 함께 방한해 한미 양국 및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다. 도쿄=AP 연합뉴스
미일 외교장관 ‘화기애애’
한중일 3국 순방에 나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8일 첫 방문국인 일본에 도착해 아소 다로 외상과 회담을 하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19일 아소 외상과 함께 방한해 한미 양국 및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다. 도쿄=AP 연합뉴스
■ 미국 대북제재 이례적 공개압박 왜?

미국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공개 외교’ 또는 ‘공개 발언’ 방식을 통해 대북제재 대상과 수위 문제에 대한 파상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직접 만나 조용하게 협의나 협상을 하는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촉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미국 정부 인사들의 발언은 외교적 수사도 없는 직설적 표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 중견 외교관은 “통상적인 외교 협상에서는 이견이 있더라도 ‘충분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공동의 노력을 하기로 했다’는 등의 표현으로 시각차를 노골적으로 노출시키지 않는다”면서 “미국의 최근 태도는 외교 관례를 깨는 심각한 양상”이라고 말했다.

○ 미국의 공개 외교 압박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 대북 포용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 고위 당국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자마자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사업 유지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정식 참여 거부 의사를 밝혔다.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정부의 방침을 밝힌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 등이 남북 경협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은 것은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짙다. 회담을 통해 이견을 조정하는 것보다는 공개 발언을 통해 한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해 압박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16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의 대북제재 강화를 촉구했다. 라이스 장관은 “한국이 모든 대북 활동을 재평가할 것임을 분명히 한 만큼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것”이라며 경고로 해석될 만한 발언까지 했다. 19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어떤 기조로 끌고 나갈지 미리 공개한 것이다.

외교장관 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17일 방한한 힐 차관보는 더 강경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금강산 관광 사업을 ‘북한 권부의 돈벌이 창구’로 지목하는 등 작심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 공개 압박은 한국에 대한 불만

미국이 외교적 관행에서 벗어나 ‘공개 외교’ 방식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게 외교관들의 분석이다. 미국의 ‘공개 외교’ 행보의 배경에 대한 분석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직접 대면해 한국이 부담스러워하는 요구사항을 협상 테이블에 꺼내기에 앞서 미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협상장 밖에서 공개적으로 요구 사항을 말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17일 힐 차관보가 기자들에게 금강산 관광 사업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 뒤 참석한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에서는 거의 금강산 관광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둘째, 한국 정부가 지난주 당국자 브리핑을 통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문은 남북 경제협력사업 및 PSI와는 무관하다”며 대북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나타내자 공개적인 압박 전술을 구사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분석이 많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안보리 결의문 이행 논의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정부의 태도에 실망해 ‘공개 외교’를 하기로 결정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12일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북한은 압박과 제재를 가한다고 (대화에) 나올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 등이 미국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 정부 내의 대응 방안 이견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하루 앞둔 18일까지도 대북제재 대상과 수위, 방식 등을 놓고 정부 내 이견이 조율되지 않아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이날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해 ‘존재 양식은 두고 운용 방식을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대아산이 하는 금강산 관광 사업을 유지하되 정부의 지원금은 중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관광 대가로 북한에 지급하는 현금을 현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통일부는 이 같은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간사업인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한 축소나 중단 조치는 취할 수 없으며 운용 방식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마땅한 대상이 없다는 것.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가 금강산 관광 사업에 지원한 금액이 50억 원에 불과했는데 그걸 없애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 라이스 방일 아소 외상과 회담

미국과 일본이 1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근거한 대북 제재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6자회담 참여 국가 순방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미일 양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부터 안보리가 제재 결의를 채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찰떡 공조’를 과시해 왔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일본 방문에서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함으로써 대북 제재의 강도와 구체적인 방법에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는 한국 중국 러시아를 압박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 장관이 이날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과의 회담에서 대북 제재 결의를 착실히 이행하도록 관계국에 촉구하기로 한 것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는 회담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번 선박검색은 안보리 결의에 근거한 “강제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에 덧붙여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자의 통과를 저지하는 데 “각국 당국은 가능한 일을 모두 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라이스 장관의 방일 회담은 이처럼 관련국들에 압력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선박 검색에 일본의 참여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회담이 열리기 전 국회 답변에서 “주변사태법을 당장 적용한다고는 말하지 않겠다”며 신중론을 폈으나 양국 외교장관의 합의로 미일의 공동선박 검색은 사실상 확정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양국 실무진은 검색을 할 때 예상되는 무력 충돌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미군과 자위대 간 역할 분담과 협력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전망이다.

라이스 장관이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미일 안보동맹에 따라 미국이 일본의 안보를 철저히 보장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이 ‘핵우산’을 일본에 계속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줌으로써 북한의 핵실험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일본 내의 핵 무장론에 쐐기를 박는 효과를 노린 듯하다고 일본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핵 무장론이 중국을 자극해 동북아 평화에 또 다른 불안요인으로 비화하는 사태를 조기에 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6일 TV 인터뷰에서 일본의 핵 무장론에 “그들(중국)이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라이스 장관은 일본행 비행기 안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것(일본의 핵무장)이 상황 개선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라이스, 한국 PSI 참여확대 요구할것”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18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9일 방한해 한국 정부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한 협력 확대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초청 강연에서 “PSI는 대량살상무기(WMD)의 국제적 확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라이스 장관은 WMD 확산 방지를 위한 국가협력체제의 시급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 측이 한국의 PSI 정식 참여를 압박하고 나서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 현재 한국은 미국이 제안한 PSI 8단계 활동 가운데 5개만 참가하고 선박의 검색이나 나포 등 핵심적인 3개 활동에 대해서는 북한과의 충돌 가능성을 들어 참가하지 않고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PSI는 북한과 이란 등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어기는 국가들로 인해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은 PSI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미국과 동맹국이 북한의 불법적인 무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안보리 결의 이행 측면에서 심각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더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에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지원을 끊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안보리 결의문의 중점 목표”라며 “한국과 중국 등 북한과 가까운 나라들이 북과 협력하는 부분에 대해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2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서는 “면밀히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만약 2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이는 안보리 결의뿐 아니라 유엔 헌장에 있는 약속들을 파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추가 핵실험을 하면 유엔 회원국들은 결의문 이행을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사용하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버시바우 대사는 대북제재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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