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정권의 상투적인 주민설득 논리

  • 입력 2006년 10월 16일 03시 04분


《북한 지도부는 핵실험으로 다시 한번 ‘사고’를 쳤지만 주민들은 핵실험 이후 어떤 일이 뒤따를지 몰라 뒤숭숭한 상태다. 북한에선 이럴 때마다 노동당에서 작성한 강연 자료가 전국에 하달돼 주민 교양에 활용된다. 강연 때는 늘 비슷한 논리들이 등장했다.》

“호랑이라도 고슴도치는 못먹어”

김일성 주석이 직접 지었다는 ‘호랑이와 고슴도치’ 이야기는 힘 있다고 우쭐대는 호랑이 앞에 모든 짐승이 머리 숙이지만 고슴도치만 굴복하지 않고 호랑이의 코끝에 올라타 계속 찔러 대며 혼내 준다는 내용이다.

1968년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나포 사건 뒤부터 ‘고슴도치론’은 김 주석이 제시한 ‘전국요새화’ 방침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떠올랐다.

이후 평화 시기에는 국방 제일주의 노선의 대변자로, 위기 상황에서는 내부 진정제로 활용돼 왔다. 위기 상황에서 고슴도치론은 이렇게 변한다.

“미국은 오만한 호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민과 전국이 요새화된 고슴도치 같은 나라다. 숲 속에 맛있는 짐승이 널렸는데 호랑이가 하필 고슴도치를 잡아먹겠다고 전력을 다할 필요가 전혀 없다. 먹기도 쉽지 않지만 잡아 봐야 먹을 만한 고기가 없다.”

“美와 마주달리면 그들이 피할것”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때 미국의 ‘북폭설’이 튀어나오고 북한 전역도 당장 전쟁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로 술렁거렸다. 고슴도치론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당국은 새 논리를 만들어냈는데 흥미롭게도 ‘치킨게임’ 얘기와 흡사하다.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으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차를 몰다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 양쪽이 핸들을 꺾지 않으면 둘 다 승자가 되지만 또 동시에 공멸한다.

1994년 6월 노동당 중앙당 선전부 강연과장은 김일성대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벼랑길에서 두 자동차가 전속으로 마주 달리고 있다. 부딪치면 둘 다 죽는다.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러나 미국 놈들은 작년에 소말리아에서 미군 18명이 죽자 바로 군대를 철수시킨 겁쟁이들이다. 미국이 반드시 먼저 브레이크를 밟게 돼 있다.”

“외부지원은 先軍에 바치는 선물”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후 불어 온 화해무드는 당국에 위협이었다. 고생이 곧 끝날 것이라는 북한 주민들의 희망 속에 ‘적국’에서 지원 물자가 밀려들어 왔다. 주민들의 사상적 와해를 경계한 당국은 새로운 전리품 논리를 만들어냈다.

북한 강연 자료들에 따르면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김일성 주석은 눈 덮인 만주 허허벌판에서 총만 갖고 15년간 빨치산 투쟁을 전개해 승리했다. 먹을 것, 입을 것은 적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으로 충당했다. 지금도 같다. 외부의 지원 물자는 총대를 중시하는 선군노선이 만들어낸 전리품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점은 빨치산은 전투로 빼앗았지만 장군님은 알아서 갖다 바치게 만들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총대가 약화돼선 안 된다. 적들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

주성하 기자(김일성대 졸업·2001년 탈북)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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