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없이 쌀 한톨 안줘” 강변… ‘포용정책 구하기’

  • 입력 2006년 10월 14일 02시 56분


남북관계의 주무부처인 통일부에서 포용정책을 앞장서 추진해 왔던 고위 당국자가 13일 ‘포용정책 고수’ 의지를 천명한 것은 정부 내의 치밀한 조율을 거친 뒤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9일 핵실험 직후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던 태도를 바꿔 1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 분위기로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핵실험이 일어났다면 국민이 얼마나 불안하겠느냐”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당의 정체성 문제와 직접 연관된 포용정책 고수를 강하게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논란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포용정책 기조를 유지키로 한 것은 현 정부의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워 온 포용정책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왜 포용정책이 매를 맞아야 하나”=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격앙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핵실험을 막지 못한 데 대해 무한대의 책임을 느낀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책임과 관계없이 (포용정책에 대해) 사실은 사실대로 표현하겠다”며 작심한 말을 이어나갔다.

이 당국자는 포용정책 실패의 핵심으로 지적되는 ‘대북 퍼주기’ 논란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며 “쌀 한 톨 주면서도 그냥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분계선(MDL) 부근인 경기 파주시에 영어마을과 LG필립스LCD 단지가 조성된 것 △핵실험에도 사재기가 재연되지 않은 것 △탈북자 대상 설문조사에서 대남 인식이 호전된 것 등을 대북 포용정책의 효과로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포용정책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에 줄 불이익은 언급 없어=그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 아무 제재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제재만으로 북한의 핵을 막을 수 없다”며 “제재를 가하면서도 희망을 보여야 (대화에) 나오지, 제재를 가시화한다고, 봉쇄했다고 손들고 나오고 그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정부가 어떤 불이익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 당국자는 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한다고 해서 (북측을) 아프게 한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시장원리에 따라 대북 경협사업자가 하는 정상적인 상행위인데 북한에 대한 현금 지원의 창구로 지목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책임론 논란=이 당국자는 지난해 ‘핵 포기와 상응조치’를 담은 9·19공동성명 발표 이후 적극적으로 북한과 양자대화에 응하지 않은 미국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며 북핵문제가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에까지 이른 것은 미국 책임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이 당국자는 “‘인질범하고도 협상하는데 직접 대화하라’고 설득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치팅’(1994년 제네바합의를 어긴 것을 지칭)하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미국이 “북한이 6자회담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하면 북한과 양자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혔는데 북한이 불응한 데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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