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의 ‘국립묘지 참배 정치’

  • 입력 2005년 8월 15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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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단 30여 명이 어제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현충탑에 참배했다. 북측 대표단은 “6·15 (공동선언) 시대에 맞게 구태에서 벗어나 화해 협력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라고 밝혔다. 그러나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북측의 국립묘지 참배를 순수하게 환영하는 분위기와 ‘숨은 뜻’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교차한다.

북측은 그동안 방북한 남한 측 당국자들에게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과 혁명열사릉 참배를 요구해 왔다. 따라서 앞으로 ‘상호주의’를 내세워 이 같은 요구의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북측이 김 주석의 ‘항일투쟁 경력’을 앞세워 ‘최소한의 예의’를 요구해 올 경우 곤란한 입장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북의 ‘깜짝쇼’가 남측을 상대로 이미 진행 중인 ‘이념해체’ 작업의 촉매제로 이용될 가능성이 걱정이다.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이 “북한은 먼저 6·25전쟁 도발과 각종 대남(對南) 테러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끝났다’는 평가가 남측에선 우세하지만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지도부는 남북 간 이념전(戰)에선 오히려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오래다. 그 바탕에는 남남(南南) 갈등이 깔려 있다. 어젯밤 대학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연대 민중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 등 1만여 명이 경희대로 몰려가 가진 반미(反美) 집회가 북측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축전을 앞두고 정부는 해외 ‘반체제 인사’ 12명의 입국을 불허할 방침이었으나 북측이 “행사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위협하는 바람에 허용했다고 한다. 이런 ‘북한 눈치 보기’가 북한의 자신감과 오판(誤判)을 키워줌으로써 진정한 남북 화해·협력에 대한 남한 내부의 광범위한 합의를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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