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압수 274개-국정원 소각 264개…사라진 13개는?

  • 입력 2005년 8월 3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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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청 테이프 13개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국가정보원이 1999년 전 미림팀장 공운영(孔運泳·58) 씨에게서 회수해 소각한 도청 테이프는 261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검찰이 최근 공 씨 집에서 압수한 274개의 테이프보다 13개가 적은 것.

이에 따라 사라진 테이프를 놓고 갖가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누가 빼돌렸나=공 씨가 국정원의 요청으로 1999년 도청 테이프를 반납하면서 이 가운데 13개를 남기고 반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공 씨가 어쩔 수 없이 도청 테이프를 반납하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민감한 내용이 담긴 13개는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공 씨는 1일 검찰 조사에서는 “유출한 테이프를 모두 복사했으며 이 중 원본 테이프를 국정원에 반납했다”고 진술했다. 공 씨의 변호인도 2일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숨긴 테이프는 더 이상 없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추정은 공 씨가 복사한 뒤 반납한 도청 테이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보고라인에 있었거나 관련 부서에 있었던 관계자가 빼돌렸을 가능성이다.

당시 테이프 내용을 확인한 국정원 관계자들이 개인적인 목적이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테이프를 유출해 활용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추론이 사실일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13개의 테이프를 빼돌렸다면 그 내용이 261개에 담겨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폭발적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당시 김대중(金大中) 정부에는 유리하고 정적들에게는 불리한 정보가 담겼을 가능성이 높다. 2일 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 사무총장이 말한 “경악할 내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3, 제4의 복사본은 없나=공 씨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복사본을 재미교포 박인회 씨에게 건네줬다. 박 씨는 또 이것을 다시 복사해 보관하고 있다가 검찰에 자진 반납했다.

따라서 사라진 원본 13개도 이런 식으로 복사 재복사 재재복사돼 나돌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삼성과 중앙일보 고위관계자의 대화를 도청한 테이프 한 개만으로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한다면 원본 실종과 복사본 난무가 몰고 올 후폭풍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반면 공 씨가 원본을 복사하는 과정에서 테이프 개수가 늘어났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컨대 120분짜리 분량의 원본 테이프 1개를 60분짜리 공테이프 2개에 복사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그 이상으로 늘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공 씨의 변호인인 서성건 변호사는 2일 오후 입원 중인 공 씨를 면담한 직후 “테이프 복사 과정에서 도청은 됐지만 내용을 알수 없는 테이프(13개 추정)를 공 씨가 추려냈고, 이를 복사한 테이프(261개 추정)와 함께 보관해오다 압수당한 것이라고 공 씨가 말했다”고 전했다.

공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테이프 13개는 별것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신빙성 여부는 검찰이 더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공운영씨 변호인 “孔씨, 13개엔 잡음만 녹음됐다고 해명”

국가안전기획부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 씨의 변호인인 서성건 변호사가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공 씨가 녹음테이프를 집에 보관하게 된 경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공운영 씨의 변호인인 서성건(徐盛健) 변호사는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검찰에 압수된 도청 테이프 274개 외에 공 씨가 빼돌리거나 따로 보관 중인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이날 밤 공 씨를 면담한 뒤 “국가정보원에 반납한 테이프와 검찰에 압수된 테이프 개수가 다른 것은 도청이 제대로 되지 않은 테이프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 씨가 국정원에 반납했다는 테이프와 검찰이 압수한 테이프 수에 차이가 난다.

“공 씨는 국정원에서 호신책으로 갖고 나온 테이프를 자택에서 직접 복사했다고 한다. 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원본 테이프 내용을 자세히 듣던 중 도청이 제대로 되지 않고 ‘지지직…’ 소리만 나는 테이프가 있어 복사본 테이프 쪽에 놓았다. 그러다 보니 1999년 반납한 테이프(261개)와 압수된 테이프 수(274개)에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원본 13개가 사라졌다는 얘기 아닌가?

“공 씨는 테이프 수를 정확히 세어 보지 못했고, 도청 테이프 중에서 도청이 제대로 되지 않은 테이프가 13개나 있었는지 확실히 기억하지 못한다. 복사를 하는 과정에서 길이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압수된 것 말고 다른 테이프는 더 없나.

“없다.”

―13권의 녹취보고서 내용과 274개의 테이프 내용은 일치하나.

“일치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고 하더라.”

―자술서에서는 테이프가 더 이상 없다고 했는데 집에서 274개나 나왔는데….

“좀 설명이 필요하다. 집에 있던 건 국정원에 반납한 것과 같은 것 아니냐. 더 이상 없다는 게 국정원에 반납한 것과 다른 내용의 테이프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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