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南과 北, ‘민족끼리’ 합창만으론 안 된다

  • 입력 2005년 6월 16일 0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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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 5주년 기념 평양축전에 참가한 남북 대표들은 예상대로 ‘민족끼리’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양측 민간대표들은 어제 채택한 민족통일선언 5개항 곳곳에 ‘민족끼리’나 ‘민족공조’라는 말을 담았다. 이날 당국대표단 공동행사에서도 북측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책임 있는 당국간의 공조’를 거듭 강조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남북대화 카드를 이용해온 북한은 이번에도 민족을 앞세운 이념공세를 전방위로 폈다. 핵문제와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민족공조와 화해’ 분위기 연출로 피해가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이 땅에서 핵전쟁의 위협을 제거할 것’이라는 선언 내용, “미국이 이 땅에 핵전쟁의 검은 구름을 몰아오더라도 우리 민족끼리 이념을 꺾을 수는 없다”는 14일의 평양방송 보도 등은 그런 속내를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한반도에 핵전쟁의 위협 상황을 부른 것은 바로 북의 핵개발이다. 그래서 북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북측의 ‘민족끼리’ 공세에 남측은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시종 휘둘린 인상이 짙다. 핵개발뿐 아니라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국제사회의 흐름에서 벗어난 ‘민족끼리’의 합창은 남북을 함께 고립시킬 우려를 높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3일 북한 정치수용소에서 탈출한 한국 기자를 만나 “한국민은 북한의 인권유린에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앞으로 인류의 보편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대북(對北) 압박의 수단으로 쓸 것임을 예고한 신호탄이다.

그럼에도 국내 일부 진보진영은 핵문제나 인권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북한의 특수성을 앞세운다. 정부의 대북 접근 자세도 이런 ‘내재적 접근’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편적 기준을 갖고 북한 문제를 다루어야만 제대로 된 해법도 나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방북대표단의 행보는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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