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盧당선자 "균형자, 美"→2005 盧대통령 "한국" 변경

  • 입력 2005년 4월 29일 03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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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최근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 달리 당선자 시절부터 오랫동안 ‘미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강조했었음이 확인됐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03년 1월 17일 미국 및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초청 연설에서 “미국이 지금까지 한반도 안전을 보장했다면 앞으로는 동북아의 ‘힘의 균형자’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동북아 질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경우 중일 간 군비경쟁을 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는 데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며칠 뒤인 1월 25일에는 미국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에 관해 “앞으로도 동북아의 분쟁을 예방하는 균형자로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 점에 관해선 미국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 ‘대통령 어록·연설문’ 부분에 실려 있다.

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주한미군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강조했다. 당시 노 후보의 국제담당특보였던 이충렬(李忠烈) 씨가 외신기자들을 위해 작성한 자료에도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지역 균형자로서 한국에 주둔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당시 이 자료가 미국 정부 관리들에게 전달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 후 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5일 MBC와의 특별 대담에서 ‘한미동맹의 방향 설정’에 대한 질문을 받고 “미국은 중요하다. 앞으로도 동북아에서 세력 균형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관계로 가야 한다”고 다시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전직 외교관은 28일 “노 대통령이 적어도 집권 초기에는 전통적 미국관에 동의하고 이를 수용했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던 노 대통령이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올해 2월 25일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다. 여기서 노 대통령은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동북아 균형자로서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3월에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등에 참석해 동북아 세력 균형자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과 언론의 비판에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외교통상부, 동북아시대위원회의 고위 관계자들이 해명하는 과정에서 균형자론의 개념은 조금씩 수정됐다. 균형자가 사실상 ‘촉진자’나 ‘매개자’를 뜻한다는 설명도 나왔다. NSC는 27일 “균형자론은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다”는 내용의 공식 해설자료를 냈다.

노 대통령은 균형자 역할의 주체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뀐 배경을 공개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 일각에선 미국은 미국대로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되 우리도 독자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정진영(鄭璡永)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대통령 스스로 미국이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공언해 오다 갑자기 그 역할을 한국이 하겠다고 하니까 주변국의 오해도 받고 혼란도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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