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동성]유화적 對北정책 한계에 왔다

  • 입력 2005년 2월 11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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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이 10일 외무성 공식 성명을 통해 6자회담을 거부하면서 핵무기의 제조·보유를 선언한 것은 미국과의 대결수위를 높이려는 ‘벼랑 끝 전술’의 채택을 의미한다. 최근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미국으로 하여금 대북 강경 노선으로 회귀할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남북교류 및 대북지원사업의 계속 추진과 ‘북핵 불용납’ 외교원칙 간의 모순을 해소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북핵 문제는 분명 한반도 위기의 내연요소다. 하지만 우리의 안보 위기의식은 불감증에 빠진 지 오래고 북핵 관련 뉴스는 식상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우리 대북인식 체계에 내재하는 모순과 오류를 깨닫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면 한반도 재앙은 턱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의 대북인식 오류는 ‘김정일은 합리적 대화 상대’라고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강박이론’에서 싹이 텄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 핵개발=자위적 수단’ 발언은 인식적 오류가 상황적 무오류 수준으로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북한 당국과 지도자는 ‘합리적’이기에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민족적 합작이 가능하고,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평화통일에 이를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대북 신화’가 우리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北이 합리적이라는 오류 확산▼

‘합리적 인간’ 모델을 말할 때는 전략적 계산능력의 보유뿐 아니라 ‘상식의 수준’을 전제로 하며, ‘자위수단’이라는 것도 자타 공멸의 극한적 개연성이 배제된 ‘상식적 수단’일 때 의미를 인정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특정 이데올로기 지향성과 통일 민족주의 그리고 개인의 한과 정략적 계산 때문에 ‘신화’와 ‘현실’을 혼동하면서 북한 당국(김정일)의 ‘합리적 선처’에 매달리려는 꼴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대북인식 오류의 결과는 무엇인가.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민족 공조’의 전술 강화에만 몰입하게 하면서 핵 협상에서의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케 했고, 최악의 인권 상황임에도 정권의 생존을 위한 남한과 중국의 원조를 당연시하는 습성만 키워주었다. 어떤 인사들은 남북교류의 확대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해소됐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이들은 그게 북한 지도부의 ‘평화 의지’ 때문인지 체제 능력의 한계 때문인지는 관심이 없다.

이번 북한 당국의 핵무기 제조·보유 및 강화 선언이 우리로 하여금 ‘상식 수준’으로 돌아가 대북인식의 기초를 재정립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첫째, 북한 핵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미국 때문이 아니라 동북아 전략균형을 깨뜨려 군비경쟁(일본 및 대만의 핵무장 유혹)을 낳고 테러집단으로의 유출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상식을 잊어선 안 된다.

둘째, 현재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기술적 능력은 없을 것이니 북핵은 결국 남한과 일본에 대해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자위적 수단’은 기본적으로 ‘민족 인질극’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재인식해야 한다.

셋째, 북한의 ‘체제 변환’을 바라는 세계 민주국가들의 여망을 북한이 ‘적대시 정책’이라고 비난한다고 해서 이런 여망에 대한 존중을 죄스러워하거나 위협시해서는 안 된다. 일국의 외교란 원칙과 현실 간의 조화를 끌어내는 과정인 바, 위협의 개연성 때문에 보편적 가치의 주장을 포기하는 것은 국정 차원에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

▼북핵 피해자는 결국 우리▼

마지막으로, 북한의 핵 보유와 ‘벼랑 끝 전술’은 분명 민족 말살의 개연성을 높이는 도박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와 국민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의 고수를 위해 보다 결연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지난 수년 동안 북핵 문제 타결 지연의 일차적 책임은 북한과 미국에 있었지만 우리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자성해야 한다. 북핵 문제와 민족주의를 동일선상에 놓고 혼동하며 대북 유화책에만 연연해 북한의 전략 전술에 끌려 다닌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강온 양면의 조화로운 대북정책을 구사한다는 결연한 자세를 갖춰야 할 시점이다.

김동성 중앙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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