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저격사건 문서공개]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 입력 2005년 1월 20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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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여사 피격 직후1974년 8월 15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진 육영수 여사(오른쪽). 당시 박상범 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이 권총을 빼들고 박 대통령이 숨어있던 연단을 막아서고 있다. 사진 제공 조선일보
陸여사 피격 직후
1974년 8월 15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진 육영수 여사(오른쪽). 당시 박상범 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이 권총을 빼들고 박 대통령이 숨어있던 연단을 막아서고 있다. 사진 제공 조선일보
정부가 20일 문세광 사건 관련 기록이 담긴 외교문서를 공개한 것을 계기로 사건 이후 끊임없이 나돌았던 의혹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문서에서도 사건 당시부터 제기된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기존 의혹=사건 직후부터 제기된 의문은 국내에서 문세광이 단독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가능했는가 하는 점이다. 문세광이 어떻게 권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김포공항으로 들어왔으며, 경비가 삼엄한 당일 행사장에 권총을 가지고 출입비표도 없이 입장했는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행사 당일 대통령경호실이 이례적으로 ‘대통령 도착 5분 전까지는 차량출입증이 없더라도 통과시켜라’ ‘몸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의혹의 절정은 과연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게 맞느냐는 것. 당시 수사발표에 따르면 사건 당일 현장에서 울린 총성은 모두 7발로 문세광이 4발, 경호원이 3발을 쐈다. 당시 경호원이 쏜 총탄 한 발은 합창단원 장봉화 양(당시 성동실업여고 2)을 맞혔지만 나머지 두 발의 행방이 묘연한 것이다. 수사 당국은 문세광이 발사한 제4탄이 육 여사를 맞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수사를 맡았던 이건우 당시 서울경찰청 감식계장은 사건 발생 15년 만인 1989년 월간 ‘다리’와의 인터뷰에서 문세광이 쏜 탄환은 육 여사를 맞히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계장은 당시 경호실이 현장 검증도 하기 전에 육 여사 피격 원인을 밝혀 낼 핵심 증거물인 탄두를 모두 수거해 버린 배경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경호원이 잘못 쏜 총탄이 육 여사를 죽음에 이르게 했거나 제3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추측도 나돌았다.

▽새로 드러난 의문점=사건 발생 직후 일본도 문세광이 일본 국적의 가짜 여권을 사용해 재일교포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점 때문에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번 문서 공개로 한국과 일본이 발표한 수사결과는 판이했음이 드러났다.

우선 한국 측은 남편 명의의 가짜 여권을 문세광에게 만들어 준 요시이 미키코(吉井美喜子)라는 일본 여성을 공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그녀를 여권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라는 가벼운 처벌만을 했다.

문세광의 배후와 관련해서도 한국 측은 조총련 소속 김호용 등 여러 명을 거론했지만 일본 측은 뚜렷한 단서를 잡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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