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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6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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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민족의 숙원이며 한미공조는 우리 안보의 중추인 만큼 소홀히 할 수는 없겠지만 한 우물만 파는데 집착할 수는 없다. 다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우려가 있다. 좀 더 넓은 시야와 융통성 있는 방법을 통해 우리 외교이익의 극대화를 이루어야 한다. 아세안(ASEAN)+3이 꽉 막힌 우리 외교 통로를 뚫어 줄 바로 그 해법을 가지고 있다.
▼한국외교 좁은 울타리 벗어날때▼
일반 국민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아세안+3’이라고 일컫는 국제기구는 일찍이 예견하지 못한 엄청난 변화를 동아시아에 불러 오고 있다. 동남아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이 회원국으로, 1997년에 출범한 짧은 역사를 가진 이 지역협력체는 평화, 번영, 진보의 동아시아공동체 건설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물론 동아시아공동체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 논의 단계이고 유럽연합 정도의 단계에 이르기에는 요원하지만, 최근 회원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활발한 교류와 다각적인 협력을 보노라면 동아시아공동체의 실현도 결코 멀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세안+3은 매년 한 차례의 정상회의를 포함해 13개 분야의 각료급 회의, 17개 분야의 고위관리회의 등 무려 47차례의 정부차원의 회의가 열린다. 2002년 제6차 정상회의는 동아시아공동체의 건설을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한 바 있고, 2003년부터는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 함양에 필요한 단기 협력사업 17개를 일제히 집행했다. 지난 몇 년간 아세안+3의 성장은 너무나도 빨라 국제정치나 동아시아 전문가들도 그 진척상황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다.
한국은 여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작년 말 정상회의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와 함께 아세안+3을 성사시키고 제도화하는 데 핵심적인 일을 했다. 한승주 주미대사는 ‘동아시아공동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협력사업을 구상하는 임무를 맡은 동아시아비전그룹의 의장이었다. 한국외교가 이렇듯 독자적이고 주체적으로 역할을 수행한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한국의 힘과 협상력은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의 미묘한 역사적 지정학적 정치경제적 관계와 구도에서 나온다. 동아시아는 반영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 중국과 일본 두 강대국은 서로를 불신하며, 상대방의 주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패권경쟁을 하고 있다. 이 외에 동북아 강국들의 팽창이나 경제적 지배를 우려하는 동남아 국가들의 경계심,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발전 및 민주화 진전 문제 등 공간적 역사적 맥락이 한국으로 하여금 양 세력을 맺어주고 중재해 줄 수 있는 적임자의 위상에 설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학구도는 한반도 문제를 동북아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놓고 풀려 할 때에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구도다.
▼‘동아시아공동체’서 핵심역할▼
강대국 사이에 끼이고 치여 활개를 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외교가 지금 바라보아야 할 곳은 동남아가 있는 서남쪽이다. 아세안은 우리가 일찍이 추구해 온 ‘평화 자유 중립 지대’를 지향하고 있고, 아세안지역포럼은 남북한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안보협의체이다. 아세안+3은 한중일 3국의 정상을 유사 이래 처음으로 그리고 매년 모으고 있는 실질적인 국제기구다. 우리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호기가 바로 동남아에 있다. 동남아라는 보고에서 캐고 또 캐면 우리 외교는 그만큼 성과를 거둘 것이다.
신윤환 서강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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