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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0월 12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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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A씨는 중국에 체류할 당시 중국 남성과 동거해 4세 된 딸이 있었다. A씨는 중국 남성과 딸을 호적에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북한에 남은 전 남편을 상대로 남한 법원에 이혼을 청구해 확정 판결을 받아야만 했다. A씨는 올해 소송을 냈지만 아직 재판은 시작도 되지 않고 있다.
▽탈북자 이혼소송 급증=올해 2월 서울가정법원 가사 7단독 정상규 판사(현 홍성지원 근무)는 탈북 여성이 제기한 이혼 소송을 처음으로 받아들여 이혼 판결을 내렸다.
정 판사는 당시 “헌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북한도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원고가 북한에서 한 혼인은 남한에서도 유효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남북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에서의 혼인관계 지속을 요구하는 것은 가혹하다”며 이혼을 허용했다.
이후 탈북자의 이혼소송이 몰리기 시작했다. 8월 말 현재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탈북자 이혼소송은 89건. 지난해엔 단 2건이었다.
과거에는 탈북자들에게 북한에서의 혼인 여부를 묻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남한에서의 재혼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북한에 남았던 가족들이 추가로 탈북해 오는 경우가 생기면서 이 부분을 명확히 할 필요성이 생기자 대법원은 지난해 3월 호적 예규(例規)를 고쳐 호적부의 ‘신분사항’란에 북한에서의 혼인 사실을 기재하게 했다.
이로 인해 탈북자들은 남한에서의 합법적인 재혼이 어렵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 것.
▽재판 실태와 대책=정 판사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많은 판사들은 현행법 체계로는 탈북자들의 이혼사건에 대해 판결하기 쉽지 않다고 보고 대부분 재판을 시작하지도 않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북한을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 인정할 것인지가 근본적인 문제”라며 “남한 법원에 재판 관할권이 있는지, 남한법과 북한법 중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논란거리”라고 말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의원은 최근 법원의 제안으로 ‘북한이탈주민정착 및 지원법’에 탈북자 이혼에 관한 특례규정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남한에서 호적을 취득한 뒤 3년이 경과한 경우 북한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대한변협 탈북자법률지원단 임통일(任統一) 변호사는 “혼인생활 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탈북자에게 이혼을 허용해 주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로선 특례 조항을 신설해 해결하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독일-중국-대만은▼
동독과 서독, 중국과 대만 등 분단을 경험한 다른 국가들도 우리와 유사한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중국과 대만은 모두 법적으로 중혼(重婚·이중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단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빚어진 중혼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의사와 현실을 존중해 대체로 후혼(後婚)을 인정하는 쪽으로 법을 운용해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중국은 양안(兩岸)이 개방된 1987년 이전에도 대만과 관련된 이혼사건에 대해 비교적 융통성 있게 처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분단 직후인 1959년 ‘대만으로 도주한 장제스측 사람의 이혼처리 회신’. 당시 인민최고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관할 저장(浙江)성 고급인민법원에 전적으로 일임했고, 저장성 고급인민법원은 “본인의 요구에 따라 이혼 판결을 하고 동시에 이혼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혼을 권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만도 양안 개방 이후 중혼이 문제가 되자 1992년 ‘대만지구와 대륙지구 인민관계 조례’를 제정했다. 제한적으로 양안 주민의 민사(民事)관계를 국제사법 관계에 준해 결정하도록 별도의 기준을 만든 것.
이 조례는 1987년 이전에 부부 중 한 쪽이 중혼한 경우 후혼을 유효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통일 전 서독에서는 주로 ‘실종선고’를 통해 당초의 혼인관계를 해소했다.
동독은 초기의 ‘1국가 원칙’을 폐기하면서 ‘2국가 원칙’에 따라 서독을 외국으로 보고 서독과 관련된 법률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법 이론에 따르면서 자연스럽게 이산부부의 이혼 문제를 해결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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