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 이어 고려도 넘보나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40분


코멘트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자칫 고려사 왜곡으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 홈페이지(www.cass.net.cn) 초기화면의 ‘핫이슈’ 코너에는 고려의 고구려 계승성을 부인하는 내용이 소개돼 있다.

연세대 중문학과 강사인 이유진 김선자 박사가 19일 확인한 이 글은 고구려가 멸망한 지 250년 후에 등장한 고려는 왕(王)씨가 세웠고 고구려는 고(高)씨가 세웠기 때문에 귀속관계가 없으며 고려의 활동범위가 삼한(한반도)을 벗어난 적이 없어 고구려가 아닌 신라의 계승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은 또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서한(西漢) 낙랑군(樂浪郡)의 한인(漢人)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글이 근거로 삼는 것은 “중국 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왕씨는 낙랑군의 망족(望族·명망 있는 집안)이었다”는 내용. 또 이 글은 “왕건이 임종 전에 전한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자신이 고씨 고려의 후예라고 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기는 평민출신이라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학계에선 왕건이 낙랑군 출신의 한인이라는 중국 학자의 고증은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신대 안병우 교수(고려사)는 “‘고려사’에 실려 있는 ‘고려세계(高麗世系)’에서 왕건의 조상인 호경(虎景)이 백두산 출신이라는 기록은 있어도 지금의 평양일대인 낙랑 출신이라는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중국측 사료인 ‘자치통감(資治通鑑)’이나 ‘고려도경(高麗圖經)’을 보면 왕건이 발해인과 혼인을 맺었다거나 ‘고구려의 대족(大族) 출신’이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고구려연구재단의 윤휘탁 연구위원은 “중국학자의 고증이라는 것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광명일보 2003년 6월 24일자에 실린 ‘고구려역사 연구의 몇 가지 문제’라는 제목의 시론이 전부”라고 지적했다.

사실 변강사지연구중심 홈페이지에 뜬 글은 ‘변방의 군중’이라는 뜻을 담은 변중(邊衆)이라는 정체불명의 학자가 기고한 이 시론과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광명일보가 중국 공산당의 문화정책을 대변하는 기관지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이 글을 올린 마다정(馬大正·66)은 중국 공산당원으로 변강사지연구중심의 총책임자(연구소장)를 지냈으며 변강사지연구중심의 핵심인 7명의 학술위원회 위원 가운데 한 명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이처럼 근거도 희박한 설을 바탕으로 고구려와 고려의 관계를 끊으려는 것은 고구려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끈질긴 의도 때문이라는 게 우리 학계의 분석이다.

동국대 사학과 윤명철(尹明喆) 교수는 “이는 단순한 학자 개인의 학술적 주장이 아니라 중국 최고 지도부의 결정”이라면서 “기본적으로 동북공정 자체가 정치논리이지 역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윤휘탁 연구위원은 “중국측 사서(史書)가 예전부터 고구려와 고려를 모두 고려로 통칭해왔기 때문에 고씨 고려니 왕씨 고려니 하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라며 “고조선과 조선도 결국은 같은 국호를 사용했고, 중국이 이를 승인해 놓고는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려니 역사날조도 서슴지 않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학계에서는 또 중국측이 이런 비논리성을 합리화할 방편으로 고구려와 고려의 연계성을 끊는 차원을 넘어 고려사마저 중국사의 일부로 주장할 가능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안병우 교수는 “중국이 2004년 동북공정의 연구주제로 ‘원조(元朝)와 고려관계 연구’를 선정했는데 고려사와 관련된 주제로는 처음”이라면서 “고려가 90년간 원나라에 복속됐다는 점을 들어 고려사마저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이호갑기자 gd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