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7월 9일 18시 5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개혁 진영의 거짓말▼
연극인들은 ‘연극인 비하 발언’이라며 발끈했지만 공무원과 연극인 가운데 누구 말이 믿을 만한지는 이내 판가름 나고 말았다. ‘가벼운 마음의 추천’이었다던 오 차관의 말은 청와대 조사에서도 거짓임이 드러났다. 오 차관은 청탁 의뢰자인 서영석 서프라이즈 대표 부부에게 “정 장관 이름을 거론해도 좋으냐”며 나름대로 세심한 확인절차를 거친 다음, 정 교수 앞에서 ‘정 장관 부탁’이라는 말을 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정 교수의 폭로 내용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까지 그의 발언이 잘못됐다는 반론은 없다. “아직도 정 장관이 개입했다고 확신한다”는 정 교수의 발언은 ‘강한 추측’이기 때문에 제외하고 나머지 그의 폭로는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이번 의혹의 핵심인물로 교수임용을 청탁한 서프라이즈 대표의 ‘거짓말’은 일일이 옮기려면 너무 장황해지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서씨는 사건이 불거진 다음날 서프라이즈에 올린 반박문에서 서씨 부부가 나눴다는 대화내용을 소개했다.
‘서영석=그래, 정진수를 만났어, 안 만났어?
집사람=오 차관에게 부탁한 뒤 며칠 있다가 정진수에게서 전화가 와 만나자고 하더라. 그래서 만났지-(중략)-당신에게 말도 안 했으니 누구에게 부탁했다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누구에게 부탁했다고 얘기는 못하고 “내가 근 10년간 교수 임용이 안 되니 여러 사람이 걱정하고 있죠”라고 답변했지.’
청와대 조사의 결론은 서씨 부부가 정 장관의 부탁임을 사칭하고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을 중간에 내세운 뒤 오 차관에게 청탁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 결과와, 서 대표 부인이 당당하게 장관을 거명했다는 정 교수의 진술을 종합해 보면 이 대화체의 내용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번 ‘진실 게임’에서 고발자 정 교수의 상대편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친노(盧) 사이트’ 서프라이즈의 전 대표 부부와 문화부 차관, 문화계의 개혁일꾼이라는 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이 그들이다. 정 장관은 개입증거가 없다니까 빼놓더라도 하나같이 현 정권에서 권력과 명망을 지닌 인사들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청탁 문제를 떠나 개혁과 정의를 외쳐온 이들의 떳떳하지 못한 언행이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속히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수는 없었을까. 이들은 누구보다도 밀실야합과 비리, 그것을 감추는 과거 행태에 신물이 나 있던 사람들일 터인데 똑같은 구태를 반복했다. 거짓말을 대중이 눈치 챘을 때 비리 자체보다도 거짓말로 인한 분노가 더 파장이 크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이들에게 큰 피해를 본 셈인 정동채 장관이 가해자인 서씨 부부를 놔두고 정 교수와 언론에 소송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또 다른 궁금증과 함께 실망감을 부풀릴 뿐이다.
▼권력을 고발한 ‘앙큼한 용기’▼
이희승은 조선시대 선비를 다룬 수필 ‘딸깍발이’에서 그 의기와 강직을 배우라고 했다. 선비들의 ‘앙큼한 자존심’과 ‘꼬장꼬장한 고지식’은 결코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민족과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이번 의혹 말고도 방송위원회의 직무유기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을 뽑아준 대통령이나 정당이 아닌, 국민을 위해 올곧게 일하는 의인(義人)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이 점에서 개혁 진영의 부도덕을 ‘앙큼한 용기’로 고발한 정 교수는 누가 뭐래도 딸깍발이 의인이 맞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