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해찬, 보스 보다는 전략가 스타일

  • 입력 2004년 6월 9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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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해찬 의원은 88년 13대 총선 때 평화민주당으로 당선된 이래 내리 5선을 역임했다. 95년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 잠시 외도한 것을 제외하면 국회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만큼 검증된 인사다.

이 의원은 ‘조직의 리더’라기보다는 ‘실무능력을 갖춘 책사(策士)형’으로 분류돼 왔다. 이 때문에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3번씩이나 제1야당과 집권여당의 정책위의장을 맡겼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탁월한 ‘선거 기획통’이다. ‘15대 대선기획단 부단장’ ‘15대 총선기획단장’ ‘16대 대선기획 부본부장’ ‘17대 대선기획본부장’ 등 선거 때마다 선거기획을 도맡아왔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역량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로 부상하진 못했다. 꼬장꼬장하고, 성격에 맞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달려드는 비타협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정치성향은 초년병에서 5선 중진에 이르는 동안 ‘색깔이 강한 개혁주의자’에서 ‘안정적 개혁주의자’로 변모했다. 2001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시절 김 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지시하자 “지금 이 문제를 다루면 색깔논쟁으로 비화돼 다른 개혁에 차질이 생긴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지난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그는 “유능하고 책임 있는 여당으로서 생산적 개혁을 완수하겠다”며 “깃발로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밀착하여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개혁을 기필코 성공시키겠다”고 ‘개혁 완급조절론’을 설파했다.

이 의원의 정치역정에서 검증돼야 할 대목은 우선 김대중 정권시절 동교동계 구파와의 관계다. 그 시절 재야파 대부분이 ‘물’을 먹었지만 이 의원은 승승장구했고, 당시 일부 소장파들은 “동교동계 의원들과의 끈끈한 관계 때문”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동교동 역할론’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응집력 있는 세력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한 배를 탔지만 동교동과의 친분 때문에 정동영(鄭東泳) 신기남(辛基南) 의원이 당시 주도했던 정풍운동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98년 교육부장관 시절에는 한나라당 김정숙(金貞淑) 의원이 “교육개혁을 한다며 딸에게 40만원짜리 과외를 시켰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당시 “허가를 받은 대학원생에게서 받았고 불법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2002년 8월에는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병풍유도발언을 요청했다”고 발언해 검찰에 소환되는 등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편 이 의원은 9일 ‘개혁 총리론’에 대해 “나는 합리적 개혁 노선을 추구한다. 총리는 개혁만 하는 게 아니라 국가안전관리부터 두루두루 살피는 자리다”며 “무엇보다 경제가 중요하다. 투자 확대를 위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 잠재성장력을 키워 나가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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