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채청 칼럼]‘노무현 코스’ 지망생들에게

  • 입력 2004년 5월 18일 18시 53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엔 새벽시장 같은 활기가 넘친다. 기대를 안고 찾아온 자천타천의 공신들로 북적거린다. 주문이 맞으면 즉석에서 자리 흥정도 이뤄진다. 장관 차관 청장 사장 등등 거래품목이 어마어마하다. 헌정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진 DJ정권 출범 때 특히 경기가 좋았다.

그때 그곳에 노무현 대통령이 들른 적이 있다. 부산시장 선거와 15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한 그의 명함은 썰렁했다. 또한 대선 직전 DJ캠프에 합류한 터라 썩 융숭한 대접은 받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거침이 없었다. “뭘 하고 싶으냐”는 필자의 질문에 주저 없이 “노동부 장관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인제 코스’가 모델인데…▼

당시엔 그의 재야 경력 때문일 것으로 생각하고 지나쳤으나 최근 그의 지인은 “그게 아니다”고 일러줬다. 노 대통령은 일찍이 ‘이인제 코스’를 의식하고 있었다고 했다. YS정부의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해 3, 4년 만에 여당의 ‘깜짝 놀랄 만한 젊은 대권 후보’로 부상했던 이인제씨 같은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영욕(榮辱)이 갈려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한 사람은 검찰에 구인되는 신세가 됐다. 그와 함께 ‘이인제 코스’는 잊혀지고 대신 ‘노무현 코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단 7개월간의 장관 경력으로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한 노 대통령의 속성 과정이 차기 대권을 노리는 여권 인사들에게는 환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총선 승리와 대통령 탄핵 기각으로 재집권 분위기에 들떠 있는 여권에선 요즘 인수위 시절에 버금가는 흥청거림이 감지된다. 노무현 코스 지망생들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과반 의석을 가진 집권당 의장과 원내대표의 격을 따지지 않는 입각설부터 그들의 차기 대권구상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연 정동영 김근태씨 등이 2007년 대선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낙관할 수 없다. 우선 여권이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 개혁 작업의 본질적 속성 때문이다. 손때를 타기 쉬운 개혁이 나름의 선도(鮮度)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허물을 벗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럴 경우 앞에 선 사람들이 차례로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현 정권 출범 이후 여당은 어지럽게 변신을 거듭했다. 민주당과의 결별 이후가 더욱 현란하다. 한때 여당의 얼굴로 노 대통령이 ‘형님’으로 불렀던 정대철씨는 지금 옥중에 있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인 김원기씨의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다. 임기 2년의 당의장에 선출된 정동영씨는 불과 4개월여 만에 중도 하차했다.

정동영씨와 함께 2000년 말 민주당의 정풍운동을 주도한 신기남 천정배씨가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벌써 개혁당 출신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다. ‘천-신-정’ 세 사람도 정풍운동 때와는 뒤바뀐 자신들의 처지에 금석지감이 들 것이다. 신기남-천정배 체제는 또 얼마나 버틸까. 그 다음엔 어떤 사람들이 당을 이끌까. 아직은 뒤에서 고함만 지르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뭘까. 오늘의 여당에 던지게 되는 의문들이다.

▼내부 비판자에게 미래가 있다▼

여하튼 여권의 분화와 함께 노무현 코스 지망생도 늘어날 것이다. 그들이 누구든 차기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면 권력과의 동화(同化)를 거부해야 한다. 즉 최고 권력자 및 그 친위 집단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필요하면 권력의 강력한 내부 비판자나 내부 감시자가 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두 발로 선 대표적인 정치인이 바로 천-신-정이고 김근태씨 아닌가. 그들은 온대로 가면 된다. 만약 자신들이 창출한 권력이라고 해서 권력에 대한 긴장을 푼다면 그들도 한 겹의 허물로 사라질지 모른다. 역설적으로 노무현 코스를 벗어나야 차기 리더의 자리가 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임채청 편집국 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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