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동업자’ 左희정-右광재, 1년도 안돼 추락 위기

  • 입력 2003년 12월 12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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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전 대통령국정상황실장과 안희정씨는 ‘좌(左)희정, 우(右)광재’로 불릴 만큼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꼽혀왔다.

두 사람은 노 대통령 사단의 핵심 축인 ‘386’ 참모진의 양대축으로 노 정권 탄생의 1등공신이기도 하다.

연세대(83학번) 운동권 출신인 이씨는 87년 부산에서 위장취업했다가 구속됐을 때 노 대통령이 변론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고, 88년 국회의원 보좌관을 맡은 이후 15년 동안 정치역정을 함께해 왔다. 노 대통령이 92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열게 된 것도 이씨의 아이디어였다.

이씨는 탁월한 ‘브레인’ 역할을 했고, 노 대통령은 이씨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동지로 받아들였다. 노 대통령은 대선 승리 직후 이씨를 “내 개인에 대한 존경심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존경심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고려대 운동권 출신인 안씨는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의원의 비서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90년 3당 합당 때 노 대통령 진영에 합류했다. 이씨가 ‘기획통’이었다면 안씨는 ‘살림꾼’의 역할을 했다.

노 대통령이 손을 댔다가 곤욕을 치렀던 장수천 사업의 뒷마무리를 맡은 것이나, 지난해 경선캠프였던 지방자치경영연구원의 살림살이를 도맡았던 것도 안씨였다.

그가 올해 들어 나라종금 퇴출 저지로비 명목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에도 노 대통령은 안씨를 ‘동업자’라고 부르며 그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 이후에도 안씨는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가끔 식사를 할 정도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열린우리당 이상수 의원은 대선 당시 안씨의 역할에 대해 “일종의 노 캠프 연락 창구였다. 이씨로부터는 직접 돈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해 안씨는 자금, 이씨는 기획이라는 역할 분담에 충실했음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두 사람을 ‘광재씨’ ‘희정씨’라고 부를 정도로 격의 없는 동지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친노(親盧) 의원들과 시니어 참모그룹의 소외감과 반발을 초래해 결국 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의원이 이씨의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각각 고향인 강원 평창-영월과 충남 논산에서 내년 총선 출마를 통해 여권 안팎의 견제구를 돌파할 정치적 입지 구축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불어닥친 불법대선자금의 폭풍으로 이들이 무사히 총선이라는 강을 건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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