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참모들 “상상도 못했다”…文수석도 뒤늦게 알아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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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빼든 ‘재신임’ 카드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사전에 전혀 그런 낌새를 채지 못했다”며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윤태영(尹太瀛) 대변인은 이날 오전 10시반경 춘추관에서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 후보자를 발표하는 브리핑을 하던 도중 청와대 본관 쪽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뒤 “10시45분에 노 대통령이 기자간담회를 할 계획이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내용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해 사전에 아무 예고가 없었음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예고된 시간보다 9분가량 늦은 오전 10시54분경 춘추관에 도착해 곧바로 회견을 시작했고, 준비된 문안이나 메모 없이 재신임 구상을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밝혔다. 그 직후 회견장 앞줄에 앉아있던 일부 방송사 기자들이 휴대전화로 기사를 긴급 타전하며 잠시 분위기가 술렁거리자 노 대통령은 “속보도 중요하지만 이거(회견)부터 하고 하시죠. 제가 흔들려서 말하기 힘듭니다”라며 힘겨운 심경을 토로했다.

회견장에 배석한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은 눈물을 글썽였고,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이날 회견 사실은 수석비서관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문 수석이 뒤늦게 황급히 참석했고, 이정우(李廷雨) 정책실장과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 등은 회견장에 아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부분의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하던 중 TV를 보고 깜짝 놀라 한동안 넋을 잃었다”며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6공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김희상(金熙相) 국방보좌관은 “노 대통령이 당당하고 결백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본다. 나는 6공 때 대통령 중간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리저리 빼다가 4년을 질질 끌려 다녔다”며 노 대통령의 재신임 카드를 높게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귀국 직후인 9일 저녁 참모진과의 간담회에서도 “최도술 전 비서관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입장을 밝혀야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참모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재신임’ 구상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최 전 비서관 문제로 전면에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 좀 상황을 지켜보자”고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10일 오전 10시 정찬용(鄭燦龍) 인사보좌관이 보고한 감사원장 후보자 인선안을 재가한 직후 문 비서실장만 집무실로 따로 불러 “기자회견을 통해 재신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히겠다”고 통보했다는 후문이다. 문 비서실장은 이때 “책임은 비서실에 있다”고 완곡하게 만류했으나, 결국 노 대통령의 뜻을 꺾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전북 전주에서 열린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해 미리 준비한 연설문 대신 즉석연설을 해 감정이 격앙돼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노 대통령은 “말씀드릴 내용을 잔뜩 적어 왔지만, 선수단 여러분 다리가 아프실 겁니다. 열심히 싸우십시오. 그러나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싸우십시오”라고 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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