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 오전 “공소보류 검토안해” 오후들어 “맞습니다”

  • 입력 2003년 10월 1일 23시 29분


1일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송두율(宋斗律) 독일 뮌스터대 교수에 대한 국정원의 ‘공소보류 검토 의견’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 반발해 감사가 중단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날 오후 5시40분경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홍준표(洪準杓) 이윤성(李允盛) 의원 등은 국감을 중단한 채 기자실로 찾아왔다. 이들은 “국정원에 ‘검찰에서 국정원측이 공소보류 검토 의견을 냈다고 한다’고 추궁하자 오전엔 부인하다가 오후 들어서야 뒤늦게 이 사실을 시인했다”고 흥분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떻게 국정원이 국감에서 허위증언을 할 수 있느냐”며 “더 이상 이런 국정원 지도부를 상대로 국감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국감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국정원의 거짓말을 계기로 왜 송두율이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태연하게 입국했으며 KBS가 송두율을 미화하는 방송을 했는지 진상을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질의 과정에서 ‘송 교수사건은 공소보류 요건이 안 된다’고 지적했더니 국정원장이 ‘그 말이 맞다’고 해 놓고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대공사건은 국정원 의견이 검찰에 대해 구속력을 갖고 있다”며 “국정원이 공소보류 검토 의견을 내면 검찰이 그 의견에 따라 수사 방향을 정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박정삼(朴丁三) 국정원 2차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공소보류 가능이란 단서조항을 붙인 이유는 국민의 법 감정과 시대상황 변화에 맞춰 검찰이 그를 처리하는 데 ‘프리핸드(자율권)’를 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소속 정보위원들은 오후 7시반경 여의도 당사에서 최병렬(崔秉烈) 대표와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국정원이 공소보류 의견을 검찰에 전달한 경위를 철저히 규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부 의원은 최 대표에게 “국정원 내부에서도 송 교수를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불구속 기소’ 또는 ‘공소보류’ 의견으로 결정이 될 때까지 내부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다”는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진(朴振) 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4월 국정원장 청문회 직후 국회 정보위가 여야 만장일치로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낼 때 가졌던 우려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2일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송 교수에 대한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한편 송 교수의 입국 경위 및 KBS의 송 교수 미화 프로그램제작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기로 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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