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없는 국회 상임위]‘방패’ 잃은 정부, 野공세에 속수무책

  • 입력 2003년 9월 17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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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인 민주당의 분당(分黨)이 가까워지면서 국회의 ‘무(無) 여당 현상’에 따른 기묘한 국회 운영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 부처의 2002년도 세입세출 결산 심의를 위해 16일부터 열린 국회 상임위에선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야당의 대정부 공세를 방어하는 여당 의원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현상은 22일부터 본격화할 국정감사에서 여당의 책임정치보다 야당식 공세정치가 득세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져 국감의 부실화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마저 낳고 있다.

▽여당 없는 정부의 ‘진땀’=1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은 회의 시작 직후인 오후 2시 25분경부터 약 1시간 동안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중 포화’를 당했다. 김덕룡(金德龍) 김용갑(金容甲) 김종하(金鍾河) 유흥수(柳興洙) 하순봉(河舜鳳) 의원 등이 번갈아가면서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에 대한 정부의 혼선을 질타한 것.

이를 지켜보던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여당 의원들이 중간에 나서 장관이 숨 돌릴 시간이라도 만들어줬는데…”라고 푸념할 정도였다.

16일 통외통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금강산 관광사업 지원금 200억원에 대한 국회의 승인을 요청한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이 “태풍 피해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야당 의원 전체와 혼자 싸워야 했다. 민주당내 신당파인 유재건(柳在乾) 의원만 “북측을 도와줄 것이라면 제때 도와주자”며 거들었을 뿐 나머지 여당 의원들은 내내 침묵했다.

유 의원은 “나와 정치적 노선이 다른 한화갑(韓和甲) 추미애(秋美愛) 의원 등이 나를 비웃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임위 분위기가 이상해졌다”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의 경우 민주당 의원 총 6명 중 이상수(李相洙) 천정배(千正培) 조배숙(趙倍淑) 의원은 신당파이고, 간사인 함승희(咸承熙) 의원은 중도파여서 민감한 국정감사 증인 채택 문제에 대한 내부 사전 협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자치위 소속 민주당 송석찬(宋錫贊) 의원은 “요즘은 야당 의원들이 발언 시간을 넘겨가며 장관을 닦달해도 ‘시간 지키라’고 말리는 여당 의원이 없다”고 말했다.

▽무 여당 국회의 국감 부실화 우려=신당파가 20일 국회 교섭단체로 등록하면 교섭단체 의석수에 맞춰 상임위 위원들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국회 관계자들은 말했다. 그럴 경우 상임위를 옮기는 의원들은 전혀 준비 안된 국감을 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야당의 정치 공세와 ‘무 여당 현상’에 따른 책임정치 실종이 겹치면서 이번 국감은 그 어느 때보다 ‘정책 국감’보다 ‘정략 국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총무는 “우리 당과 민주당 사수파가 각자 포탄을 쏘다 보면 탄착지가 같은 경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해 이런 우려를 뒷받침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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